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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 간 '나비넥타이' 다시 유행시킨 배우

[김성호의 씨네만세 546] <닥터 후: 맷 스미스와의 작별 인사>

23.09.23 08:48최종업데이트23.09.2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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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후: 맷 스미스와의 작별 인사 포스터

▲ 닥터 후: 맷 스미스와의 작별 인사 포스터 ⓒ BBC

 
지난 60년 간 이어온 BBC 드라마 <닥터 후>는 영국을 넘어 북미와 아시아에 수천만 시청자를 둔 엄청난 작품이다. 21세기 초 잠시 중단된 시기를 기준으로 오리지날과 뉴 시즌으로 갈리는 이 드라마는 모두 합해 13명의 닥터를 갈아치우며 그 긴 생명력을 이어왔다. 그중엔 영국에서 제일가는 배우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존 허트도 있고, 출연 전까지 아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 무명배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이 드라마 출연 뒤 그들 모두가 닥터로 기억됐다는 점이다.
 
맷 스미스는 11번째 닥터로 시리즈에 합류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뉴 시즌 2,3,4에서 닥터를 연기한 데이비드 테넌트의 후임이었다. 역사상 최고의 드라마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닥터 후> 뉴 시즌 4이고, 영국 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회차 여럿이 테넌트의 출연분이고 보면, 그의 후임을 맡는다는 게 여간 부담이 아니었을 테다.
 
스미스에겐 어려움이 한둘이 아니었다. 미국으로 치면 <스타트랙>이나 <스타워즈>처럼 열렬한 지지를 받는 시리즈가 아닌가. <닥터 후>의 열성 팬을 따로 칭하는 말로 '후비안'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심지어 시리즈의 커다란 성공으로 작품은 BBC 방영 뒤 얼마 되지 않는 시차를 두고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 그대로 방영될 만큼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 어떤 닥터도 전임 닥터와의 비교를 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테넌트의 후임이 무명의 젊은 배우 스미스라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닥터 후: 맷 스미스와의 작별 인사 스틸컷

▲ 닥터 후: 맷 스미스와의 작별 인사 스틸컷 ⓒ BBC

 
영국 최고 드라마 주인공 된 무명 배우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미스는 <닥터 후> 시리즈의 전 세계적 성공에 중차대한 역할을 수행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3시즌 동안 닥터 역할을 맡았다. 이 기간 <닥터 후>는 북미에 본격적으로 진출해 수많은 팬을 양산하니, 그 전까지 영국을 제외하곤 마니아들의 드라마로 여겨졌던 시리즈가 세계에서 손꼽는 명작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뉴 시즌 5,6,7의 떨어진 작품성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적어도 상업적 성공에 있어서만큼은 맷 스미스의 시대가 전성기였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닥터 후: 맷 스미스와의 작별 인사>는 뉴 시즌 7이 종영된 뒤 나온 다큐멘터리다. 여러모로 공헌이 컸던 스미스의 하차를 전후하여 그와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는 작업이라 하겠다. 닥터와 함께 하는 인간 동료, 즉 컴패니언으로 활약한 배우들도 함께 조명된다. 특히 뉴 시즌 7 중간에 하차해 아쉬움을 자아낸 폰드 부부(카렌 길런, 아서 다빌 분)가 주요하게 다뤄진다는 점에서 시리즈 팬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통상 시리즈 뒤 스페셜이란 이름으로 단편 극영화를 제작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다큐를 찍었다는 건 인상적인 대목이다. 특히 이 시리즈가 밟아온 과정이며 얻은 성과를 팬들과 공유하여 후비안의 지지를 확고히 다지는 효과를 얻어낸다.
 
닥터 후: 맷 스미스와의 작별 인사 스틸컷

▲ 닥터 후: 맷 스미스와의 작별 인사 스틸컷 ⓒ BBC

 
전임자의 짙은 그림자에서 벗어나기까지
 
불과 44분의 다큐 안에 흥미로운 부분이 여럿 들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우선 스미스는 테넌트의 영향력을 빠르게 벗어나기 위해 상당한 고민을 했다. 재생성이란 이름으로 역사성을 이어가면서도 외모와 성격이 바뀐다는 설정은 이 드라마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즉, 새로운 닥터는 전임 닥터와 분위기며 정체성이 달려져도 무방한데, 뉴 시즌 2로 전임자를 대체한 테넌트는 가죽자켓을 벗고 멀끔한 수트를 빼입은 덜 화끈하고 더 재기 넘치는 닥터로 거듭났던 것이다.
 
스미스도 그와 같아서 제작진은 그를 테넌트와 구분되는 닥터로 만들기 위해 패션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전한다. 테넌트처럼 갖춰 입은 캐릭터로 가는 대신 완전한 수트 대신 세미정장 패션으로 변신한 것도 그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전과 달라진 닥터의 인상을 내기에 역부족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스미스는 한 가지 결단을 내리는데, 다름아닌 나비넥타이가 그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유행이 한 참 지난 패션아이템이었던 나비넥타이를 스미스는 끝까지 고집했고, 이것이 11대 닥터의 상징으로 자리했다. 심지어 나비넥타이는 이후 몇 년 만에 영국을 중심으로 전 유럽과 북미까지 퍼져나가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하기에 이른다. 유행의 배경을 설명하는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닥터 후: 맷 스미스와의 작별 인사> 제작진은 그 결정적 공헌이 스미스에게 있다고 확언한다. <닥터 후>의 독보적 인기를 고려하면 근거 없는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닥터 후: 맷 스미스와의 작별 인사 스틸컷

▲ 닥터 후: 맷 스미스와의 작별 인사 스틸컷 ⓒ BBC

 
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기까지
 
뿐만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닥터 후> 시리즈의 첫 북미 진출 또한 스미스의 닥터가 이뤄낸다. 뉴 시즌 초기만 해도 영국에 한정됐던 시리즈는 뉴 시즌 5에 이르러 프랑스의 오르셰 미술관과 아를로 건너가 반 고흐를 에피소드 주인공으로 삼더니, 뉴 시즌 6에선 아예 대서양까지 건너가 워싱턴과 뉴욕, 유타 등을 종횡무진한다. 심지어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등장시키고 워터게이트 스캔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언까지 닥터의 입으로 내놓는다.
 
스미스는 촬영 뿐 아니라 홍보활동 차 수차례나 미국에 방문했고, 저 유명한 코믹콘에도 서서 팬들의 엄청난 환호를 받기도 한다. 이 즈음 작품성의 붕괴가 시작됐다는 타당한 비판에도 <닥터 후> 시리즈의 정점이 바로 이 시점이라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은 데는 이 같은 외적 확장이 자리한다.
 
다큐는 여러모로 스미스가 연기한 닥터의 이모저모를 조명한다. 종영된 지 수년이 지나서까지 왓챠와 웨이브 등 OTT 서비스에서 인기콘텐츠로 자리하고 있는 이 드라마가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를 제작진이 스스로 안내하듯 보여준다.

이 같은 태도에서 느껴지는 강한 자신감은, BBC가 제가 낳은 작품에 얼마나 큰 애정과 확신을 갖고 있는지를 알게 한다. 전성기를 맞은 K콘텐츠가 여전히 배워야 할 게 있다면 바로 이러한 모습이라고, 후비안('닥터후'의 팬들을 가리키는 용어)인 나는 그렇게 여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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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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