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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 '최고의 음반' 타이틀 얻은 비운의 가수

[명반 다시 읽기]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23.09.23 13:36최종업데이트23.09.23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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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및 시대를 아우르는 과거 명반을 현재 시각에서 재해석하며 오늘날 명반이 가지는 의의를 되짚고자 합니다.[편집자말]
"무엇이 가장 뛰어난가."

분야를 막론한 대부분의 영역에서 제기되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예술에 우열은 없다"라고 제창하는 절대주의자들도 간혹 있겠으나, 줄 세우기를 본능적으로 즐기는 인간의 본성은 예술에 역시도 비껴가지 않았고 무엇이 가장 뛰어난가에 대한 논쟁의 장을 심심치 않게 열곤 했다. 

그렇게 제기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음반은 무엇인가"라는 이 천성적 물음에 2018년, 음원 서비스 멜론과 <한겨레 신문>, 그리고 47명의 평론가 집단이 내놓은 답은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였다. 발매 당시에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지난 1998년과 2007년 각각 7위와 2위 자리에 머물렀던 유재하의 이 역작이 기어코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음반'이라는 타이틀을 얻어낸 것이다.

유재하는 어떻게 한국형 발라드를 '창조'했는가
 

유재하 정규 1집 < 사랑하기 때문에 > 앨범 커버 이미지 ⓒ 서울음반

 
그렇다면 무엇이 <사랑하기 때문에>를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음반'으로 만들었을까. 답은 시대의 흐름에 있다. 시간이 흐르며 비교적 약세를 겪고 있는 록에 반해, 지속적으로 이어진 발라드의 지배력이 장르의 창조주 격 인물인 유재하에 대한 평가를 끝없이 끌어올리게 된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은 유재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는 상투적 표현이 종종 등장하는 이유도 실제로 <사랑하기 때문에>가 현대까지 이어지는 한국형 발라드의 형식적 시초가 되기 때문이다. 한양대학교 음악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그는 대중음악에 클래식의 영향과 기법을 주입하고 메이저 코드 기반의 신선한 작법을 선보임으로써 당시 국내 대중음악에 스며들어 있던 '뽕기'와 신파적 요소를 단숨에 제거하며 한국형 발라드의 형태를 주조해 냈다.

이 개척이 또한 더욱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그 방법론이 너무도 무결하고 세련되어 발매 이후 약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장르의 본보기로 흔들림 없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우아함뿐만 아니라 서구권 팝의 세련미까지 앞서 장착하며 장르의 작법을 개발함과 동시에 완성한 것이다. 다소 일률적이라 평가받는 지금의 발라드는 물론 전성기로 통하는 1990년대 발라드, 심지어는 이소라, 김동률 등 현대 발라드의 꼭대기로 평가받는 인물들까지도 모두 이 방법론을 따르기에 유재하의 이 선구자적 프로토타입은 찬사를 받아 마땅했다. 

더불어 그가 발라드 전체에 무한한 위력을 행사한 만큼, 발라드라는 장르가 우리나라의 대중음악 전반에 끼친 방대한 영향력도 그에게 공헌을 돌릴 수 있다. 유재하로부터 비롯된 발라드의 정서가 수많은 영향을 끼치며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특유의 정체성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 정체성은 록에 독특한 감수성을 주입하며 모던 록을 인디 신의 주류로 만들었고, 록 발라드를 아예 시장의 전면으로 끌어왔다. 알앤비 역시도 브라운 아이즈 등을 통해 아련함을 장착했으며, 낭만주의적 방향성을 통해 힙합과도 직간접적인 접목을 완성했다. 오히려 발이 뻗치지 않은 영역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지경이다.

세계화의 흐름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K팝도 그 영향력을 함께 주입받았기에 더욱 뜻깊다. 후기 투애니원이나 소녀시대 태연, 슈퍼주니어 규현 등처럼 발라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뿐 아니라, BTS, 아이유, 레드벨벳 등까지,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발라드의 감수성을 표현의 과정에 섞어내며 K팝은 다른 지역 팝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바운더리를 형성하게 됐다. 더불어 드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국내 드라마에도 OST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과연 유재하로부터 말미암은 이 정서가 우리 대중문화 전반의 기반이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념비적' 그 이상의 완성도

역사적으로도 그 어떠한 작품보다 중요한 위치에 서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걸작 <사랑하기 때문에>의 또 다른 핵심적 가치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그 절대적 완성도에 있다. 고전적이면서 세련된, 완벽에 가까운 작곡은 물론이거니와 고전 음악에 힘입은 아티스트들이 쉽게 놓치곤 하는 작사 부문에서도 특출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무척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가슴으로 느껴보세요 / 나 얼마만큼 그대 안에 있는지" (우리들의 사랑)
"어둠이 찾아들어 마음 가득 기댈 곳이 필요할 때 / 그대 내 품에 안겨 눈을 감아요 / 그대 내 품에 안겨 사랑의 꿈 나눠요" (그대 내 품에)


우선 애틋한 사랑을 빚어내는 '우리들의 사랑', '그대 내 품에'는 각각 직설적이고 순수한 고백과 화려하고 낭만적인 수사로 사랑이 깊어지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진솔하면서도 문학적인 그의 이 수사는 이후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오늘 밤 / 그대 떠나고 허전한 오늘 밤 / 모두 흥겨웁게 노래 부르며 춤추는데 / 나는 어이해 홀로 외로울까 / 그대 없는 텅빈 밤" (텅빈 오늘 밤)
"이제 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대여 힘이 돼 주오 /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 그대여 길을 터주오 / 가리워진 나의 길" (가리워진 길)
"다시 못 올 지난날을 / 난 꾸밈없이 영원히 간직하리" (지난날)


이후 비교적 빠른 박자로 이별의 시작을 표현하며 처연함을 역설적으로 극대화하는 '텅빈 오늘 밤'을 지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가리워진 길', '지난날'을 통해 성찰, 후회, 추억의 여러 문법으로 이별의 과정을 다양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작사에서 그의 섬세한 구성 능력이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이다.

"나를 바라볼 때 눈물 짓나요 / 마주친 그 눈이 눈물겹나요 / 그럼 아무 말도 필요 없이 / 서로를 믿어요" (우울한 편지)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 / 내 모든 것 드릴 테요 / 우리 이대로 영원히 / 헤어지지 않으리" (사랑하기 때문에)


이어 편지를 활용한 입체적인 구성의 '우울한 편지'를 지나, '사랑하기 때문에'에서 극단으로 치달은 순수미로 작품을 마무리 짓는 모습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단조롭지 않으면서도 색깔이 뚜렷하고, 충분한 문학적 쾌감을 선사하면서도 곡의 구성을 해치지 않는, 과연 발라드의 교본과도 같은 이 작사 능력은 그의 음악적 위력을 더욱 강대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이 위업이 그의 독자적인 기록이라는 사실은 가히 경탄스럽다. 작사, 작곡, 편곡을 모두 스스로 도맡으며 '음악적 자주(自主)의 완전 실현'을 이룩한 이 역작은 과연 '기념비적'이라는 표현이 쓰이기에 여러모로 정확히 알맞은 자리다. 이러한 재능이 한 장의 작품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음에 지극한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다.
 

故 유재하의 생전 유일한 TV 출연 모습 ⓒ KBS

 
발라드의 또 다른 거성 김동률은 유재하의 죽음으로 발라드가 10년은 후퇴했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의 발라드를 보라. <사랑하기 때문에>가 세상에 나오고 약 35년이 지난 지금, 과장되어 보였던 그의 표현이 오히려 소박해 보이지 않나.

시대는 계속하여 유재하를 좇고, 그는 아직도 쉴 새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유재하를 영원히 추억하는 바로 그 이유, 그가 우리의 과거가 아닌 대중음악의 영원한 현재이기 때문이다.
명반다시읽기 유재하 사랑하기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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