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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과 사랑에 빠진 '청년작가' 세익스피어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1999년 아카데미 작품상 <세익스피어 인 러브>

23.09.09 11:26최종업데이트23.09.0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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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를 모르는 사람도 마이클 조던의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고 물리학에 무지한 사람도 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진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이름은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특정 분야에서 상징적인 존재가 된 인물은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문학작품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1500년대와 1600년대에 걸쳐 활동했던 영국의 시인 겸 극작가 윌리엄 세익스피어를 모르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세익스피어는 '각 분야의 여러 작가들이 모여 작품을 발표했던 가상인물'이라는 루머가 있었을 정도로 문학계에 미친 영향력이 막대했던 작가다. 특히 '세익스피어의 4대비극'으로 불리는 <햄릿>과 <리어왕> <오셀로> <맥베스>는 연극과 뮤지컬, 영화 등으로 만들어지며 현재의 문화예술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물론 세익스피어는 <한 여름 밤의 꿈>과 <말괄량이 길들이기> <베니스의 상인>처럼 희극도 매우 잘 쓰는 작가였다.

하지만 시와 희곡, 비극과 희극을 넘나들며 다양한 문학 작품을 썼던 세익스피어의 작품들 중 오늘날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4대 비극에서도, 5개 희극에서도 찾을 수 없다. 바로 오늘날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세익스피어의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던 존 매든 감독의 <세익스피어 인 러브>는 세익스피어가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귀족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아카데미 7개 부문 수상작 <세익스피어 인 러브>는 국내에서도 서울 50만 관객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아카데미 7개 부문 수상작 <세익스피어 인 러브>는 국내에서도 서울 50만 관객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UIP 코리아
 
다양한 분야에서 재해석된 <로미오와 줄리엣>

원수처럼 지내는 두 가문이 나오고 각 가문의 자식들이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뻔하고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는 지금까지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단골로 사용했던 소재다. 그리고 이런 설정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세익스피어 작가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멜로 드라마와 영화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원작으로 했거나 이를 연상케 하는 이야기와 설정이 자주 등장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대사가 없는 무성영화 시절부터 많이 만들어졌지만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버전은 역시 올리비아 핫세가 출연한 1968년 버전이다. 85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389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린 1986년판 <로미오와 줄리엣>은 장년층 이상 세대에게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상징처럼 기억되고 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S.E.S. 멤버였던 유진과 배우 한가인도 데뷔 당시 '한국의 올리비아 핫세'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30, 40대의 X세대에게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했던 1996년 버전의 <로미오+줄리엣>이 유명하다.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감각적인 연출의 <로미오+줄리엣>은 두 주연배우뿐 아니라 티볼트 역을 맡았던 존 레귀자모의 열연이 돋보였다. 원작과 달리 줄리엣(클레어 데인즈 분)이 칼 대신 총으로 자결하는 엔딩도 색다른 부분. <로미오+줄리엣>은 지난 2014년에 재개봉했을 정도로 국내에서 유독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화다.

조선후기에 기록한 설화를 바탕으로 지난 2011년에 방송됐던 팩션사극 <공주의 남자>는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알려지면서 25%에 달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닐슨코리아 기준). 계유정난으로 살해된 김종서의 셋째 아들 김승유(박시후 분)와 계유정난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장녀 이세령(문채원 분)이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여지없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그것과 유사하다.

1957년 초연된 브로드웨이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원수지간인 두 가문을 맨해튼 외곽지역의 인종갈등과 갱단간의 항쟁으로 각색해 만든 작품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국내에서도 1997년부터 올해까지 네 번에 걸쳐 무대에 올랐다. 2021년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지만 1억 달러의 제작비로 6200만 달러의 성적에 그치며 흥행에 실패했다.

<라이언 일병> 제치고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기네스 펠트로는 준수한 연기에도 케이트 블란쳇과 메릴 스트립을 제쳤다는 이유로 '역대 최악의 여우주연상'에 수시로 언급된다.
기네스 펠트로는 준수한 연기에도 케이트 블란쳇과 메릴 스트립을 제쳤다는 이유로 '역대 최악의 여우주연상'에 수시로 언급된다.UIP 코리아
 
영화 <세익스피어 인 러브>는 지난 2002년 BBC에서 선정한 위대한 영국인 순위에서 과학자 아이작 뉴턴(6위)과 비틀즈의 존 레논(8위)을 제치고 5위에 오른 세익스피어의 20대 청년 시절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150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라는 점에서 진지하고 심각한 이야기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세익스피어 인 러브>의 이야기는 오히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다.

북미에서 1998년 연말에 개봉한 <세익스피어 인 러브>는 이듬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13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을 비롯해 7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명작들을 제치고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감독상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스필버그가 수상하면서 '나눠먹기 논란'까지 시달려야 했다.

기네스 펠트로는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세익스피어 인 러브>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차지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원 트루 씽>의 메릴 스트립과 <엘리자베스>의 케이트 블란쳇 같은 배우들을 제쳤다는 이유로 '역대 최악의 여우주연상'에 단골로 언급된다. 하지만 펠트로는 영국 귀족 바이올라를 연기하면서 아름다운 외모뿐 아니라 미국인에겐 어려운 영국식 억양을 무리 없이 소화하는 등 나무랄 데 없는 연기를 선보였다.

중반까지 바이올라와 세익스피어(조셉 파인즈 분)의 금지된 사랑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후반부 웨넥스 경(콜린 퍼스 분)에게서 도망쳐 공연장으로 달려온 바이올라가 줄리엣을 연기하면서 분위기가 급격히 진지해진다. 세익스피어를 사랑하는 만큼 연극과 공연을 사랑했던 바이올라는 진정성 있는 연기로 줄리엣 역을 소화하며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고 관객석에 있던 엘리자베스 여왕(주디 덴치 분)에게도 인정 받았다.

세계적으로 2억8900만 달러의 성적을 올리며 흥행에도 크게 성공한 <세익스피어 인 러브>는 2014년 연극으로 각색돼 무대에 올랐다. 영국에서의 초연을 시작으로 캐나다, 남아공, 일본 등에서 공연된 연극 <세익스피어 인 러브>는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국내에서도 무대에 올랐다. 특히 <세익스피어 인 러브>의 국내 공연에서는 세익스피어 역에 정문성, 이상이, 김성철, 바이올라 역에 정소민, 채수빈, 김유정 등 인기 배우들이 캐스팅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명배우' 콜린 퍼스가 연기한 바이올라의 정혼자
 
 질투심에 눈이 멀어 살인도 저지르는 웨넥스 경을 연기한 콜린 퍼스는 12년 후 <킹스 스피치>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질투심에 눈이 멀어 살인도 저지르는 웨넥스 경을 연기한 콜린 퍼스는 12년 후 <킹스 스피치>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UIP 코리아
 
25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세익스피어 인 러브>를 만약 2023년에 같은 배우를 캐스팅해 리메이크한다면 제작비가 몇 배로 늘어날 것이다. 당시 조연으로 출연했던 배우들의 지명도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게 올랐기 때문이다. <세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바이올라의 정혼자이자 질투에 눈이 멀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웨섹스 경을 연기한 배우는 <킹스 스피치>로 2011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콜린 퍼스다.

<세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주인공 윌 세익스피어를 연기했던 조셉 파인즈는 1987년 연극 배우로 데뷔한 후 <세익스피어 인 러브>를 통해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웨섹스 경 역의 콜린 퍼스와 네드 역의 벤 애플렉이 할리우드의 슈퍼스타로 성장한 것에 비해 정작 주인공이었던 조셉 파인즈는 상대적으로 할리우드에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참고로 조셉 파인즈의 친형은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로 유명한 레이프 파인즈다.

<세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빚을 갚기 위해 세익스피어의 연극을 제작하는 로즈 극장의 극장주이자 극단장 필립 헨슬로 역은 1997년 <샤인>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호주 출신의 명배우 제프리 러시가 맡았다. 제프리 러시는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나란히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세익스피어 인 러브>와 <엘리자베스>에 모두 출연했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 받은 배우다.

1995년 < 007 골든아이 >부터 2012년 < 007 스카이폴 >까지 1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영국비밀정보부(MI6)의 책임자 M을 연기했던 노장배우 주디 덴치는 <세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연기했다. 덴치는 <세익스피어 인 러브>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는데 그녀가 극 중에서 보여준 존재감이나 연기는 흠 잡을 곳이 없었지만 극 중 엘리자베스 여왕의 작았던 비중이 관객들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세익스피어 인 러브 존 매든 감독 기네스 팰트로 조셉 파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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