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사빈 바이스, 한 세기의 기록> 스틸컷
EBS국제다큐영화제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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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9일, 이 시대의 마지막 휴머니스트 사진작가로 불린 사빈 바이스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로베드 느아노, 윌리 로니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등과 함께 전후 시대 사회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던 인물. 그의 나이 97세의 나이로 이 땅에서의 모든 작업을 마치게 된 것이다. 사빈 바이스가 세상에 남긴 족적은 뚜렷하다. 한 세기 동안 수천 명의 얼굴을 담아냈던 개인의 작업은 물론, 유명 잡지에 실린 패션 디자이너 컬렉션, 전 세계 매체를 위한 보도 사진, 그리고 수많은 출판물에 이르기까지 영역과 한계를 뛰어넘는 작업을 끊임없이 지속해 왔다.
프랑스의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인 카미유 매나지의 <사빈 바이스, 한 세기의 기록>은 그런 사빈 바이스의 일생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 작품을 연출하기 3년 전 독일 태생의 유대 여성 사진작가 게르다 타로(Gerda Taro, 26살의 어린 나이에 전쟁터에서 사망한 최초의 여성 사진작가)의 삶을 담은 감독은 연이어 휴머니즘 사진 분야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남겨진 사빈 바이스의 인생과 철학을 이번 작품에서 생생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이번 다큐멘터리에서는 예술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사진으로 증거 같은 순간을 남기는 게 좋을 뿐이었다는 사빈 바이스의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 유럽 전역의 모습을, 그리고 사람들의 표정과 모습을 자유롭게 남겼던 그녀의 마지막 표정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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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적인 것보다 시각적인 것에 민감했고, 이론보다는 실용적인 게 좋았다."
이 작품은 사빈 바이스가 세상을 떠난 다음날 촬영된 영상으로 시작된다. 마지막으로 촬영이 이루어졌을 때, 그녀는 9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무기력함을 염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걱정스러워했던 건 자신이 그간 찍어둔 사진들 가운데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자신의 사진 기술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했고,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를 사랑했다. 자신이 평생을 두고 전문 분야에 대한 분류를 거부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가 처음 필름 카메라를 손에 쥐게 된 것은 1935년 7월이었다고 한다. 호기심이 강했던 탓에 새로운 장면을 보는 것이 좋았고, 사진기는 그런 사빈의 마음을 채우기에 적절한 도구였다. 기술적으로도 그랬다. 화학자였던 아버지를 뒀던 탓에 플라스크나 비커와 같은 도구가 많은 실험실을 어릴 때부터 자주 접하며 자랐는데 그런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술적인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전시회를 자주 데리고 다녔던 어머니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채워왔던 마음속의 장면들을 사진을 통해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는 삶의 모든 순간이 사진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1949년에 미래의 남편이 되는 젊은 미국인 휴 바이스를 만나게 되는 것도 그녀의 삶에는 큰 영향을 주었다. 상상력 풍부한 화가와 사랑에 빠지게 된 그녀는 이후 50년이 넘는 세월을 남편과 함께 보내게 된다. 딸 마리온 바이스는 아버지가 엄마의 닻과도 같았고, 균형감과 집중력, 자신감을 선사하는 존재였다고 말한다. 마치 부모의 역할을 하듯이 엄마 사빈 바이스의 곁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예술가 커플이 서로의 작품 세계를 침범하며 불화를 겪는 것과 달리,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