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에스트로> 스틸컷
(주)티캐스트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저한테 아버지가 있어요?"
부자지간(父子之間)의 사이는 생각보다 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언제나 그랬다. 오죽하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일까. 아들이 동성인 아버지에게는 적대감을 갖고 이성인 어머니에게는 호의성을 갖게 되는 것을 뜻한다. 아버지의 욕망을 아들이 그대로 모방하게 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며,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정신 발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그래서일까? 동종의 업계를 함께 나아가게 되는 부자(父子) 관계에서는 그 간극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아버지의 자리가 쉽게 넘어설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고 권위적일 때, 또 아들의 성장과 성취가 보통의 경우보다 빠르고 거셀 때 그렇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일종의 질투와 경쟁심 같은 것들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여기에도 그런 뻣뻣한 사이의 부자(父子)가 있다.
지휘자 드니 뒤마르(이반 아탈 분)는 권위적인 빅투아르 클래식 음악상을 방금 막 수상하며 차세대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수상 후 단상 위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위트 있게 소감을 이어가던 그는 어머니 곁에 비어 있는 자리를 바라보며 또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다. 같은 지휘자이자 음악계의 거장으로 이미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그의 아버지 프랑수아 뒤마르(피에르 아르디티 분)다. 아들의 지난 업적이 인정되고 창창한 미래가 보장될 이 순간에도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아버지. 그런 아들의 모습을 집에서 TV로 보고 있던 프랑수아는 그 장면마저 모두 지켜보지 않고 이내 꺼버리고 만다.
음악을 배우기는 했으나 이렇게 영광스러운 날 문자나 전화는커녕 어떤 변명조차 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마음과 아들이 같은 분야에서 자신에 이어 성공하는 모습을 축하하기는커녕 그의 음악조차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아버지의 마음. 시작부터 두 인물의 불편한 관계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이 영화 <마에스트로>는 그런 두 마음의 거리 사이에 묘하게 자리하고 있는 어떤 경쟁심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복잡한 내면은 이제 세계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펼쳐 나가게 될 이와 훌륭한 업적을 뒤로하고 모두의 박수 속에 어쩔 수 없는 인생의 내리막길을 마주하게 될 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02.
두 사람의 문제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라 스칼라 극장의 지휘자 자리로 인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세계적인 극장의 무대에 설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로 지휘자라면 누구나 생애 한 번쯤 욕심을 낼만한 자리다. 그 제안을 처음 받게 되는 것은 아버지 프랑수아다. 다른 모든 업적을 달성한 그에게도 이는 평생을 기다려온 기회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평생을 미뤄온 프러포즈를 아내(미우 미우 분)에게 할 정도로 환희에 휩싸인 그의 모습. 문제는 라 스칼라 극장의 비서인 카를라(발렌티나 반델리 분)의 실수로 원래대로라면 아들인 드니에게 가야 했던 제안이 아버지 프랑수아에게 가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성이 같은 뒤마르라는 이유로, 극장이 원래 원했던 지휘자는 생동감 넘치고 힘 있는 연주가 가능한 젊은 지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원래대로라면, 극장 측에서 제대로 된 절차에 따라 소위 교통정리라는 것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지만, 영화는 이 지점에서 두 남자의 불편한 상황을 십분 이용하며 이야기를 더 높이 쌓아가기 시작한다. 이 불편하고도 당혹스러운 상황을 당사자이자 아버지인 프랑수아가 아니라, 아들인 드니에게 처음으로 알리고 직접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는 극장 측의 모습을 통해서다. 물론 극장의 지휘자 자리에 대한 제안도 함께다. 멀리 돌아온 만큼 제안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고, 그렇다고 평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이 기회를 그대로 놓칠 수도 없는 드니는 기대에 부풀어 있는 아버지에게도 이 사실을 직접 말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놓인다.
이렇게 두 사람 사이에서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숨을 죽이고 있던 갈등의 도화선에 불이 막 붙기 시작하는 지점에서부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진짜 이야기들이 하나씩 던져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영화는 두 사람의 주변 인물들을 하나씩 데려와 활용하기 시작한다. 핵심 사건 주변에 놓여 있는 위성 사건들의 이야기를 통해 클라이맥스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하는 식이다. 그 첫 번째 인물은 바로 드니의 현재 여자친구인 비르지니(카롤린 앙그라드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