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썬>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03.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빠와 살게 되었지만 니콜라스는 여전히 힘들어한다. 누군가의 품을 떠나고 또 다른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는 일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뜻이다. 피터는 완전히 반대다. 아들의 상황을 되려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그 역시 아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두 사람이 닿지 못하는 문제로부터의 거리, 각자의 틈 사이에서 감독은 니콜라스의 입을 통해 피터의 과거를 꺼내든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부모의 이혼이자 아빠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외도 사실이다. 영화의 초반부를 통해 던져진 세 요소는 이 지점에서 삼각의 모양으로 서로 뒤얽힌다. 부모의 이혼에 영향을 받은 니콜라스의 심리와 그 이혼의 매개가 되는 존재인 베스, 그런 베스를 직접 마주하게 되는 니콜라스의 불안정한 심리와 같은 식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불안정한 삼각의 구도를 계속해서 유지하면서도 독립적인 상태에 놓일 수 있도록 일종의 경계를 설치한다는 점이다. 이는 감독의 전작이었던 <더 파더>가 무대극의 형식을 스크린에서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특정 지점마다 텅 빈 공간을 보여주며 환기시켜 연극에서의 '막(Act)'을 구현했던 것과 유사하다. 이번에는 니콜라스가 어린 시절에 아직 헤어지지 않은 부모와 함께 행복해했던 영상들이 활용된다. 때마다 등장하는 장면들은 이 구도가 서로 각자도생 할 수 없음을 반어적으로 강조하는 역할이기도 하며, 주체가 되는 니콜라스의 심리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장면의 근거로 관객에게 던져지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전작에서만큼 적극적으로 화면의 물리적인 구분을 짓기 위한 용도는 아니다.
04.
영화의 스토리 라인 위에 존재하는 것이 네 사람의 삼각 구조라면, 이를 지탱하고 있는 수직적인 뼈대는 역시 큰 의미의 '아들'이다. 이 아들이라는 단어에는 앞서 잠깐 언급했던 아버지라는 존재 역시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개념이 함께 포함된다. 피터의 아들인 니콜라스와 앤서니(앤서니 홉킨스 분)의 아들인 피터, 각각의 아들이라는 이름의 자리다. 외형적인 모습으로 볼 때 두 자리의 인물은 그리 닮아있지 않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피터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방황하는 니콜라스. 하지만 영화는 두 사람을 같은 모양의 틀 위에 올려두고 찍어 누른다. 이는 일종의 대물림, 혹은 미워했던 부모의 모습을 점차 닮아가게 되는 알 수 없는 행동양식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피터가 자신의 아버지인 앤서니와 강하게 대립하는 장면 다음에 놓이는 니콜라스의 모습은 그래서 중요하다. 다시 엄마인 케이트를 찾아간 그는 이번엔 아빠가 자신을 너무 강하게 압박한다며 그 집에도 자신이 있을 자리는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니콜라스와 피터, 두 부자가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결합하는 순간이다. 각각의 장면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앤서니는 자신을 밖으로만 돌고 엄마와 자신을 항상 방치하고 버려뒀다고 생각하는 아들 피터에게 40년도 넘은 그 빌어먹을 어린 시절의 일을 좀 극복하라며 일갈한다. 다시 니콜라스와 피터의 관계로 돌아와서, 반복해서 자해를 이어가는 아들에게 그는 그 행위가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라며 멈춰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대한 아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엄마한테 상처를 줬던 건 내게 준 것이나 다름없어.'
그러니까 아들의 자리에 놓인 피터는 자신의 아버지인 앤서니의 화법을 그대로 닮는다. 언제나 자신이 주체가 되는 화법. 아들이 지금 보내오는 망가진 감정에 대한 요청이 무엇 때문인지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그 행위로 인해 자신이 어떤지를 다시 요청하는 방식이다. 이는 피터가 자신의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는 다짐 위에서 도덕적인 아버지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가 된다. 이번에는 다시, 아들의 자리에 선 니콜라스와 그의 아버지가 되는 피터다. 두 사람은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행동으로 수정하고자 하는 노력이 아닌 과거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와 실패로 갈음하고자 하는 동일한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세 사람은 닮는다.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인간이 되어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