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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눈빛을 한 거장의 숨겨진 이야기

[리뷰]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23.07.12 13:42최종업데이트23.07.1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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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스틸컷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스틸컷영화사 진진
 
오보에의 선율 첫 마디만 들어도 떨리는 가슴과 요동치는 전율이 느껴지는가? 영화 <미션>이 떠오른다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 음악을 한 번쯤 들어봤다는 증거다. 누구에게는 첫 소절을 들었을 때 떠올리는 영화가 <황야의 무법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시네마 천국>, <헤이트풀 8>일지도 모르겠다.
 
20세기 영화사의 한 획을 그었던 작품의 OST를 만들어낸 사람이자 이름 자체가 전설이 되어버린 '엔니오 모리꼬네'. 영화음악의 체계를 발명한 사람이자 음악이란 만국 공통어를 창조한 독창적인 사람이다. 25년을 함께한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엔니오를 향한 존경을 담아 헌정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타계 3주기를 빌어 특별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평생 다양한 감독과 영화 음악을 만들었지만 쥬세페 토르나토와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다. 둘은 <시네마 천국>, <말레나>, <피아니스트의 전설>, <베스트 오퍼>를 함께 작업했다.
 
본인 포함, 다양한 업계 종사자의 인터뷰가 실렸다. 어린 시절과 가족관계, 영화 음악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와 작업 방식, 거장 감독과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 우리가 잘 몰랐던 에피소드까지 두루 담고 있다. 뮤즈인 아내와의 각별함도 인상적이다. 아내가 고른 음악을 대중의 견해라고 생각했기에 그 선택을 끝까지 밀고나갔다. 영화 음악 업계의 시선에 고정되지 않고 관객의 관점으로 보려던 의도를 알 수 있다.
 
아버지 대신 생계를 책임지던 소년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스틸컷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스틸컷영화사 진진
 
엔니오는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11살부터 트럼펫을 배웠다. 집안 형편 때문에 의사를 포기하고 트럼펫 연주와 작곡을 병행했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낮에는 트럼펫을 불고 밤에는 공부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음악가 '고프레도 페트라시'에게 가르침을 받아 편곡 일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엄청난 작곡 실력으로 관현악곡을 쓰며 급성장한다. 실험적인 현대 음악을 작곡하는 '일 그루포'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트럼펫 연주자라는 꼬리표와 편견을 뒤집고 1961년 <파시스트>로 영화 음악계에 데뷔한다.
 
동창이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황야의 무법자>로 도전 정신을 발휘한다. 이는 웨스턴 스파게티의 지평을 열었던 놀라운 협업이라 평가되는 20세기 최고의 실험이었다. 클래식을 전공하고도 상업적인 영화 음악에만 치중한다는 조롱과 멸시를 견디며, 자신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건 바로 성공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우리 인생의 사운드트랙이죠"
 -한스 짐머-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스틸컷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스틸컷영화사 진진
 
그가 작곡한 음악은 500여 편에 이른다. 음악의 신이 엔니오로 잠시 환생하여 살았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수치만 보면 비범한 인물 같지만 실제는 조용하고 소박하며 겸손한 사람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모차르트, 베토벤에 견줄만한 작곡가라며 칭송했지만 "그 말은 200년 후에나 하자"라며 재능을 자랑하지 않을 정도였다.
 
평생을 음악과 영화를 위해 살았으나 유독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없었다. 제79회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았지만 음악적 성취를 인정받지 못해 아쉬워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만 6번째, 드디어 37년 만에 아카데미 트로피를 품게 된다. 2016년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헤이트 8>로 음악상을 받는 기쁨을 얻는다.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스틸컷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스틸컷영화사 진진
 
엔니오는 20세기 영화 음악 체계를 발명했으며 현대 음악을 한 단계 격상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영화의 결정적인 장면의 접근법을 알아내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었다. 마치 심리학자 같았다. 인간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선율로 만들어 공감을 이끌어내는 마법사이기도 했다.
 
영화 음악을 그저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랫동안 기억될 캐릭터화에 공들였다. 그 장면에 알맞은 선율을 찾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 냈다.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소년 같은 눈빛을 가진 마에스트로는 은퇴라는 말을 몰랐던 진정한 영화인이었다.
 
영화는 156분 동안 엔니오 모리꼬네를 관통한다. 작업한 수많은 음악을 따라가다 보면 긴 러닝타임은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도 엔딩크레딧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음악을 듣게 되는 감동이 있다. 시대를 초월하는 엔니오의 음악은 영화 안에서 다음 세대와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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