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다정 씨 2.0>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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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 씨 2.0>
감독: 김윤범
출연: 정이재, 이명준, 임마리아, 김은지
준호(정이재 분)는 엄마의 생신을 맞아 오랜 미국 출장 끝에 집을 방문했다. 자신의 딸까지 엄마에게 맡긴 채로 한국을 떠나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곁에 인간의 모습을 한 휴머노이드 로봇 '다정씨'(이명준 분)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위해 산 것이었지만 몸이 불편해 휠체어 생활을 해야 하는 엄마를 위해 계속 두게 되었다. 오랜만에 두 사람을 -한 명의 사람과 하나의 로봇을- 만나게 된 준호는 조금 묘한 인상을 받는다. 사사건건 자신이 아닌 로봇 다정씨의 편을 들며 두둔하는 엄마의 태도와 프로그래밍된 대로 맞는 말만 하기는 하지만 묘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듯한 로봇의 행동. 기분이 좋지 않다. 아니 이 상황이 조금씩 불편해진다.
영화 <다정씨 2.0>은 사람과 같은 모습과 행동을 하는 완전한 의미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류와 함께 생활하는 미래 시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시대나 기술의 거대 담론이 아니지만,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A.I가 인간의 자리를 온전히 대체할 수 있을 때 가질 수 있는 인간의 두렵고 불편한 감정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다른 존재가 우리 자신을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은 곧 대상의 물리적 효용성 및 존재의 의미를 상실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준호에게는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여 기능을 업데이트 할 수 있는 부분을 굳이 직접 알려주고 가르치려는 행동이나 생신 선물로 건넨 용돈조차 다정씨에게 바로 건네는 엄마의 모습이 의아하다. 하지만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휴머노이드 신탁'이라는 이름의 보험 금융 상품에 5억이나 되는 큰돈을 투자했다는 사실이다. A.I의 시스템보다 주인이 먼저 죽게 되었을 경우 기계의 시스템 유지 및 데이터 보관을 책임져주는 상품. 진짜 사람도 아닌 기계 장치에 불과한 로봇에게, 그것도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의 사후 처리를 위해 이 정도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람' 앞에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고 면박을 주는 모습에서 그는 엄마가 자신보다 더 의지하는 존재가 다정씨라는 이름의 로봇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영화의 중심 소재가 되는 아들 준호와 엄마의 갈등, 로봇 다정씨와 준호 사이의 불편한 기류 등 여러 문제의 중심에는 역시 '로봇의 3원칙'이 위치한다. 미국의 작가이자 교수인 아이작 아시모프가 자신의 소설 <아이, 로봇>을 통해 제시했던 윈칙으로, A.I 기술 및 로봇이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기반이 되는 인공지능의 윤리원칙이다. 이 작품에서 로봇 다정씨가 위반하고 있는 원칙은 제2원칙으로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다. 애초에 다정씨의 행동이 엄마 연경을 돕기 위한 것으로 지시되어 있기는 하겠으나, 이를 빌미로 준호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대립하는 장면이 반복되어 제시된다.
아이를 떠맡길 때나 가끔 얼굴을 비추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로봇만 남겨 두고 곁에 있어주지 않았던 무심한 아들에 대한 불신과 -엄마는 자신이 죽을 때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며, 혼자 남게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그런 배경 위에서 자식인 본인보다 다정씨에게 심리적으로 더 믿고 의지하는 엄마에 대한 질투 혹은 배신과 같은 부정적 감정들이 로봇에 대한 적대적 감정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섬뜩한 지점은 역시 영화의 후반부에 있다. 다정씨를 관리하는 로보틱스 회사에서 원래의 다정씨와 같은 모습을 한 새 로봇을 집으로 데려오는 장면이다. 큰돈으로 가입한 신탁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회사에서 어제까지의 데이터가 백업되어 있는 임시용 모델을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임시라고 하기에는 이전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고, 백업된 데이터 덕분인지 기억하고 말하는 모습 또한 완전히 똑같다. 이 장면 직전까지 슬픔에 잠겨 있던 엄마는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그를 반기고, 엄마를 위로하는 듯 보이기는 했지만 일면 기뻐 보이던 준호는 다시 분노에 휩싸인다.
다시 돌아온 다정씨의 모습 앞에서 그는 어떤 생각을 가장 먼저 떠올렸을까? 로봇의 존재적 의미와 인간의 감정적 행위 사이에서 이 작품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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