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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자살 소동, 재기... 룰라가 개척한 길

[명반, 다시 읽기] 룰라 4집 < All System Go >

23.07.08 11:19최종업데이트23.07.0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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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레트로 열풍에 발맞춰 1990년대 대중가요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습니다. 장르 및 시대를 아우르는 과거 명반을 현재 시각에서 재해석하며 오늘날 명반이 가지는 의의를 되짚고자 합니다.[편집자말]
레게는 우리나라 1990년대 초중반 대중 음악계를 풍미한 장르 중 하나다. 1993년 김건모의 '핑계'를 시작으로 투투 '일과 이분의 일', 마로니에 '칵테일 사랑' 등 레게를 차용한 곡들이 쏟아져 나왔고 젊은이들의 문화 또한 자메이카와 에티오피아 특유의 갖가지 화려한 색깔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중 'Roots of Reggae'를 줄여 'Roo'Ra'라 스스로를 이름 붙인 그룹 룰라가 있었다. 이름에서 알수 있듯 그들은 정통 레게를 강조하며 자신들이 유행에 편승한 일회성 그룹이 아님을 피력했다. 그런데도 시작은 녹록지 않았다. 남자 멤버 세 명과 여자 멤버 한 명으로 구성된 레게 혼성 그룹이라는 점에서 같은 해 데뷔한 투투와 경쟁 구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크라잉 랩'과 같은 독특한 음악 콘셉트가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김지현의 성숙한 이미지, 새로 영입된 채리나의 남다른 그루브가 인기를 끌며 이들은 점차 음악 신 내 정상 자리로 향하기 시작했다.

정상의 자리에 선 룰라
 

롤라 4집 < All System Go >. ⓒ 장지혜

 
성공적인 데뷔 후 1995년 봄에 공개한 2집 <날개 잃은 천사>는 룰라의 전성기 그 자체다. 동명의 타이틀곡 안무인 엉덩이춤과 '싸바 싸바'하는 코러스는 현재까지도 유효한 룰라의 하이라이트. 이를 통해 룰라는 '가요톱텐' 골든 컵 수상을 비롯하여 각종 상을 석권했으며 음반 판매 면에서도 한국 가요계 역사상 최단기간에 백만 장 판매를 돌파하는 등 대중으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얻었다.

승승장구하던 그들은 기세를 몰아 같은 해 연말에 3집 < 天上有愛 (천상유애) >를 발표했다. 그러나 타이틀곡을 비롯한 수록곡 대부분의 표절 정황이 드러났고 여론의 거센 비판 끝에 룰라는 결국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재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귀작으로 선보인 4집 < All System Go >(1996) 는 그래서 더 야심 찼다. 구원투수로 나선 이는 듀스의 이현도. 우리나라 대중 음악계에 힙합을 비롯한 흑인 음악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그가 룰라의 4집 전반을 프로듀싱했다.

멤버들의 랩과 보컬이 각각 사운드 시스템의 일부처럼 연출되어 각자의 특징과 매력이 조화로운 인트로 'All System Go!'부터 그의 흔적이 느껴진다. 조력자와 함께 완성도에 열을 올린 이 음반은 이전의 표절 사태를 딛고 나갈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는 선언과도 다름없었다.

논란 그 자체보다도 이즈음 룰라는 기자 회견, 자살 소동을 포함한 일련의 고난을 겪은바, 4집엔 여기에서 나아가려는 애수와 희망의 감정이 공존한다. 룰라의 이전 곡들은 주로 이별과 관련한 고독 및 도회적인 외로움에 치중해 있었다.

반면 이번 앨범은 김지현의 재즈 보컬이 특기할 만한 '내 슬픈 사랑은'과 같은 멜랑콜리한 곡부터 싱어롱 스타일의 마지막 곡 '다같이'에 이르기까지 보다 깊고 넓은 감정을 담았으며 곳곳에 '3! 4!'. '그대 곁에서', '희망의 이름으로'와 같은 트랙을 배치함으로써 밝은 미래에 대한 이들의 지향에 방점을 두었다.
 

그룹 룰라로 활동한 가수 채리나(왼쪽), 김지현.(자료사진, 2009.6.17). ⓒ 연합뉴스

 
아울러 '3! 4!'를 통해 새로운 아이콘으로 발돋움한 채리나는 그룹의 3전 4기를 완성했다. 정박을 지키지 않은 도입부 추임새로 유명한 이 곡은 채리나의 산뜻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날개를 달며 그룹의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처음 메인 보컬을 맡은 채리나의 실력이 재발굴됨으로써 룰라가 개개인이 탄탄한 실력을 갖춘 그룹으로 재평가받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음 물론이다.

< All System Go >는 그들을 둘러싼 표절 의혹에 대한 직간접적인 응답이자 음악과 대중을 향한 그들의 진심 어린 호소였다. 허심탄회한 정면돌파는 아니었기에 여전히 해당 꼬리표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이전보다 성숙한 앨범을 대중에게 선보이고 노래를 통해 어떤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 이들의 행보는 1990년대의 룰라를 역사의 오점 속으로 딱 잘라 유폐할 수 없게 한다.

확실한 점은 레게의 광풍이 불어닥친 1990년대 가요사의 추억 속에 룰라는 여전히 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4집은 이전보다 레게의 색채를 덜어내고 그 자리에 더욱 폭넓은 청중을 초대하여 결국 그들의 마음을 돌이켰다. 제 활로를 열고 길을 만든 룰라, 그리고 그와 함께 변곡점을 맞은 1990년대 레게의 역사가 이 음반에 있다.
명반다시읽기 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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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IZM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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