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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은 여자와 죽고 싶은 남자, 둘은 연인이 됐다

[리뷰] 영화 <남은 인생 10년>

23.06.13 14:01최종업데이트23.06.1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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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은 인생 10년> 스틸 ⓒ (주)디스테이션

 
오랜만에 클리셰 충실한 최루성 멜로가 반갑게 다가왔다. 잔잔하게 스며드는 슬픔의 정서가 마음에 머물렀다. 이런 장르가 사라지다시피한 우리나라와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 일본 시스템이 고마웠다. 그래서일까. 감정이 메말라가고 있는 요즘이라 값진 여운으로 남았다. 이 장르에 진심인 일본. 만화, 소설 등 거의 모든 작품을 실사화하는 정서의 작품이 꾸준히 만들어지길 희망한다.
 
하지만 관심이 아예 없다고 단정하긴 이르다. 재미와 감동이 있다면 관객은 여전히 극장을 찾을 준비가 되어있다. 지난해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한국 관객 110만 명을 동원했고, 주연배우 '미치에다 슌스케'의 내한으로 뜨겁게 회자되었다.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가 인기 없어진 것보다, 어쩌면 살기 힘든 세상이, 사랑을 사치처럼 만드는 건 아닐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10년 같은 1년을 보낸 너에게..
  

영화 <남은 인생 10년> 스틸 ⓒ (주)디스테이션

 
스무 살이 되던 해,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부모님과 언니는 아무렇지 않은 듯 슬픔을 삼키고 있을 뿐이다. 마츠리(고마츠 나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망설인다. 길어 봤자 10년, 나이 서른까지 달려갈 수 있을까? 그런대로 괜찮은 10년, 생각보다 긴 10년이 남아 있다고 긍정한다. 그러던 중 중학교 동창회에 나가 카즈토(사카구치 켄타로)를 만나게 된다.
 
카즈토는 부모님과 절연하고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다. 별 탈 없다면 가문의 업을 이어받을 테지만 도쿄로 상경해 독립했고 최근 실직하자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렸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 정신없던 다음 날 충동적으로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이유는 14살에 묻어 둔 타임캡슐을 열어봤기 때문. 10년 후 멋진 미래를 상상했지만 암울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불투명한 미래를 향한 두려움이 밀려오던 카즈토는 집 베란다에서 투신해 버렸다.
 
하지만 사람 목숨은 생각보다 질기다. 부상을 입고 살게 된 카즈토는 마츠리의 쓴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게 된다. "세상에는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사람도 있다고..." 카즈토의 말이 응석처럼 들렸던 마츠리는 너무 억울했다. 자신이 가볍게 여기던 목숨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내일이란 것을.
 
서로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준 소중한 인연. 두 사람은 오해를 풀고 서서히 친해진다. 커지는 마음을 애써 숨기는 마츠리와 달리 고백할 기회를 엿보던 카즈토는 몇 번이고 고배를 마셨다. 마츠리 또한 사랑의 유통기한을 알고 있지만 카즈토를 좋아하게 되고, 무언가를 시작해 보고 싶다. 인생 끝에서 만난 인연은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둘은 연인이 되었다.
 
"너를 만나서 이 세상이 사랑스러워졌어"
  

영화 <남은 인생 10년>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둘은 삶의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가족과의 불화로 절연한 카즈토와 사랑 가득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함께할 시간이 얼마 없는 마츠리. 한 사람은 죽고 싶어 하고 한 사람은 살고 싶어 한다. 둘은 전혀 다른 마음가짐으로 만났지만 서서히 동화되어간다.
 
점점 시들어 가는 마츠리와 달리 점점 윤기나는 카즈토는 상반된 매력으로 다가온다. 마치 마츠리의 영양분이 카즈토에게 전달되어가는 느낌. 유약한 강아지 같던 카즈토는 마츠리와 어울리며 멋진 어른으로 성장한다. 비록 마츠리의 꽃은 졌지만 카즈토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 미래를 이어갈 수 있게 된다.
 
클리셰 가득해도 누가 만드냐에 따라...
  

영화 <남은 인생 10년>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영화 <남은 인생 10년>은 고 '코사카 루카'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안타깝게도 원작자는 책의 편집 과정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국에는 심은경 주연의 <신문기자>로 알려진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이 연출을 맡아 색다른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전작들을 보면 알겠지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신파와 시한부를 녹여냈다. 1년에 걸쳐 촬영하면서 10년의 세월과 사계절을 응축했고 이 스케줄에 맞춰 일본의 유명 배우들도 총출동했다. 일본 곳곳의 1년 동안 담은 영상미가 압권이다.
 
'고마츠 나나'의 성숙한 연기와 점차 성장하는 '사카구치 켄타로'를 지켜보는 훈훈함은 덤이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마츠시게 유타카', <중쇄를 찍자>의 '쿠로키 하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페르소나 '릴리 프랭키' 등이 뒷받침해 주고 있다.
 
여담으로 실화라고 믿기 힘든 이야기의 가치를 알아본 두 배우는 영화 홍보 계약이 종료되었지만 스케줄을 조정해 내한을 결정했다고 알려졌다. 원작자와 영화의 값진 의미를 되새기며 선한 영향력이 전해져 조용히 10만 관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너의 이름은.> <스즈메의 문단속> 전담 OST 그룹으로 알려진 RADWIMPS의 첫 실사 영화음악 작업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는 비로소 각자의 영화가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남은 인생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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