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라인음향
이 노래는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의 후속곡으로 KBS <가요톱10> 골든컵을 수상하는 빅 히트를 기록하면서 신인 김건모의 입지를 탄탄하게 해 주었다. 그의 이력 초기에 방점을 찍은 곡인 셈이다. 만약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로 1집 활동이 마감되었다면 이후의 슈퍼스타 행진은 어려웠을 수도 있다.
김건모의 미친 존재감만큼이나 우린 상기한 것처럼 김창환의 당대 흑인음악 사조에 대한 이해를 주시해야 한다. '백에서 흑으로!' 음악 지배정서의 대이동을 일궈낸 업적의 주인공답게 김창환은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를 통해 R&B와 랩은 물론 본고장 미국 힙합 문화의 일부인 '샘플링(sampling)'을 시도한다.
작곡자 박광현과 이 앨범 작업을 함께 하면서 마침 그가 이승철에게 써준 곡 '잠도 오지 않는 밤에'를 인지한 김창환은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를 녹음하면서 이미 써놓은 멜로디 대신에 이승철의 곡을 삽입하려는 구상을 실천했다. 과거시제와의 연결 그리고 예술적 완성도 제고를 위한 방식으로 본고장 힙합 씬에서 하나의 문화가 된 샘플링 기법을 국내 음반 사상 최초로 실험한 것이다.
그가 얼마나 흑인음악의 한국화에 열성이었는가를 일러주는 대목이다. 팬들은 당대 기준에서 트렌디한 이 곡에 부담은커녕 융숭하게 화답했다. 애초 앨범의 타이틀곡은 첫 곡인 발라드 '이별 뒤의 그림'이었으나 곧바로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로 교체된 것은 음악수요자의 기호를 반영한 결과였다.
앨범은 또한 그 무렵 음악의 작곡 프로듀서 부문에서 선두를 형성했던 네 사람의 출중한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그 네 강자는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등 2곡을 작곡하고 7곡의 가사를 쓴 김창환을 비롯해 박광현, 김형석, 천성일이다. 박광현은 '이별 뒤에 그린 그림' 등 3곡을, 김형석은 '첫인상' 등 2곡, 천성일도 '내가 그댈 느끼는 동안' 등 2곡을 썼다.
사대천왕이 할거하는 작품답게 그 이름값이 적절히 발휘되면서 수작을 주조하는 데 성공했다. 코러스의 멜로디만으로도 단 한 곡도 놓칠 수가 없다. 1992년 기준으로는 R&B 발라드 선율과 리듬 패턴이 너무 추세를 앞서갈 만큼 생소해서 타이틀곡이 되지 못한 비운의 곡 '내가 그댈 느끼는 동안'은 김창환의 설명에 따르면 앨범에서 가장 아쉬운 숨은 보석이다.
전체적으로 발군의 선율과 시대감각을 갖춘 트렌디 걸작으로 부족함이 없다. 이 점은 김건모의 슈퍼스타덤을 예고한 앨범, '김건모-김창환' 콜라보의 스타트, 당대 흑인음악의 친절한 가이드 등 늘 언급되어온 앨범의 역사적 의미들을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작아지지 않는 앨범의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전부가 청취의 환희를 부르는 곡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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