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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전 좋아하는 거장이 꼽은 '무법자 삼부작'

[김성호의 씨네만세 420] 중국 문호 위화가 꼽는 영화감독 'TOP3'

22.12.16 11:00최종업데이트22.12.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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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에서 해적판만 5000만부가 팔렸다는 소설 <인생>의 작가 위화가 내한했다. 교보인문학석강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적 지식인을 대중에 지속적으로 소개해 온 대산문화재단이 15일 위화의 강연을 기획한 덕이다.

주지하다시피 위화는 영화와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90년대 초 발표돼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인생>이 90년대 중반 이후 폭발적인 판매고를 올린 데는 영화 <인생>의 흥행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중국을 대표하는 거장 장예모의 이 영화는 새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영화제에서 1994년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큰 관심을 받았다. 당대 중국사회가 이 작품에 국가적 애정을 표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위화의 소설이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는 덕분인지, 그의 작품은 한국에서 영화화되기도 했다. 배우 하정우가 연출한 <허삼관매혈기>가 바로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때문에 이날 강연에선 그를 <인생>이 아닌 <허삼관매혈기>의 저자라고 소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신작 <원청>과 관련해 중국 내에선 거듭 <인생>을 쓴 작가로 홍보되는 그가 한국에선 <허삼관매혈기>의 작가로 더 유명하다니 영화가 가진 파급력이 어떠한지 적잖이 흥미롭다.
 

▲ 위화 교보인문학석강 ⓒ 대산문화재단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강연에서 위화는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았다. 비록 90년대 후반 이후 뒤늦게 책이 폭발적으로 팔려나간 이유를 명확히 언급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이날 위화는 자신이 꼽는 최고의 영화감독으로 세 명을 꼽겠다 말했다. 이제는 세계적 문호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위화가 세 명의 영화감독을 추려 언급한다는 건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때문에 나는 그 감독들이 누구인지를 씨네만세 독자들에게 알려주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문학을 애호하는 영화팬이라면 누구나 위화가 꼽는 감독이 누구인지 알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화가 처음으로 언급한 이름은 세르지오 레오네다.
 

▲ 황야의 무법자 스틸컷 ⓒ 세르지오 레오네

 
총격전 좋아하는 세계적 문호라니

맞다. 마카로니, 또는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불리는 이탈리아 서부극의 거장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앞세운 무법자 시리즈로 명성 높은 그는 위대한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꼬네와 짝을 이뤄 끝나가던 서부극의 새 장을 열어 젖혔다. 위화는 바로 그 레오네를 활극 제일의 거장이라 말했다.

위화는 시원한 총격전을 좋아해 서부극을 보길 즐긴다고 하였다. 초반 15분 동안 총을 쏘지 않는 영화는 흥미가 떨어진다며 제가 쓰는 소설과는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는 레오네의 영화를 만면에 웃음을 띄고 이야기했다. 그는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로 이어지는 무법자 삼부작을 언급하며 레오네의 서부극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기실 활극을 좋아하는 영화팬이라면 누가 레오네를 애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위화라는 작가가 레오네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건 특별히 인상 깊은 대목이다. 선 굵은 이야기와 어딘지 낭만적인 분위기, 무엇보다 분명한 듯 보이지만 확정할 순 없는 가치들에 대한 시선이 그의 작품 가운데도 없다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산딸기 스틸컷 ⓒ 잉마르 베르히만

 
위화가 존경하는 감독, 잉마르 베르히만

그는 이어 또 다른 이름을 이야기했다. 스웨덴의 베르히만이다. 그는 세르지오 레오네는 두 번째로 훌륭한 감독이라 힘주어 말하며 베르히만이 그 위에 있다고 확언하였다.

1918년생으로 지난 2007년 사망한 베르히만은 자타가 공인하는 현대 영화 최고 거장 중 하나다. <제7의 봉인> <처녀의 샘> <산딸기> <페르소나> 등이 대표작으로, 심오하면서도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들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위화는 제가 베르히만과 처음 만난 순간을 회상한다. 젊을 적 친구 집에 놀러가서 우연히 <산딸기> 비디오테이프를 보았던 순간이다. 그는 이 영화를 본 뒤 이전까지 제가 본 것이 영화가 아니었음을 알았다고 떠올렸다. 제가 알던 한 장르, 하나의 예술세계가 완전히 부인될 정도의 충격이란 어떤 것일까.

세계적 문호가 된 위화가 여적 설레는 표정으로 이국의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게 하는 영화인은 어떤 작가였던 것일까. 문득 오래 전 보았던 <산딸기>를 다시금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인생 포스터 ⓒ 장예모

 
그는 세 번째를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베르히만과 레오네 뒤를 잇는 또 다른 영화인은 누구일까. 아쉽지만 그건 상상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할 듯하다. 위화는 너무나 심취하여 이야기를 한 나머지 제가 세 명의 감독을 꼽기로 했단 것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수백의 참석자들은 베르히만과 레오네에 대한 그의 애정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소설들이 그러하듯 때로는 닿지 못하고 알 수 없어 더욱 좋은 것도 있는 법이다. 그가 세 번째 감독 꼽기를 잊은 덕에 우리는 그가 애정하는 또 한 명의 영화인이 누구일까를 오래도록 상상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그가 유독 언급하길 피하려 하지만 분명히 감사하고 있을 중국의 걸출한 감독의 이름을 가만히 떠올려 본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위화 인생 세르지오 레오네 잉마르 베르히만 장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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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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