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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선택한 게 잘못? 감독이 던진 묵직한 질문

[넘버링 무비 239] 영화 <첫번째 아이>

22.11.22 17:52최종업데이트22.11.2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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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첫번째 아이> 메인포스터 ⓒ (주)더쿱디스트리뷰션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다시 일을 하니까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에요."

딸 서연을 낳고 1년의 출산 휴가 끝에 회사에 복귀한 정아(박하선 분)는 낮에는 일터에서 일하고 밤에는 아이를 돌보는 워킹맘이다. 남편 우석(오동민 분)은 말로는 육아를 도와준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돈을 벌어오는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아니, 할 의지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 14개월밖에 되지 않은 딸은 종일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고, 자신은 하루의 절반 밖에 돌봐줄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문제는 그림자처럼 그녀의 꽁무니를 쫓아다닌다. 복직을 하고 나면 아이를 돌봐주기로 했던 친정 엄마가 쓰러져 버리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감사하게도 이웃인 303호 아주머니가 도움을 주기로 해서 당장 급한 상황은 면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도 없는 노릇. 눈치를 보면서 정시에 혼자 퇴근을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한편, 정아가 육아 휴직으로 회사를 쉬고 있는 동안 지현(공성하 분)은 그녀의 자리를 대신해 계약직으로 입사한다. 계약 기간은 1년. 당장 내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처지인 그녀는 어떤 일이든 의욕적으로 하고자 하고 야근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의 선임이라고 할 수 있는 정아에게도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 싹싹하게 먼저 다가가고자 한다. 어쩌면 정아의 말 한마디가 내년 자신의 재계약에 영향을 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아는 그런 지현이 조금 부담스럽다. 회사에서의 일을 최소한으로 하고 남은 여력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 육아를 해야 하는 자신과 직접적으로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자리는 정규직이라고는 하지만 아이를 낳은 여성을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을 알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일부러 그런 좋지 않은 이미지를 남길 필요는 없다.

어떻게든 하루빨리 누군가 아이를 돌봐줄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정아는 결국 종일 아이를 봐줄 보모를 구하기로 한다. 재중동포인 조선족 화자(오민애 분)가 영화에 등장하게 되는 시점이다. 원했던 것은 처음부터 한국인 보모였지만 소개소의 착오로 보내졌다. 아직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를 조선족 보모에게 하루 내내 맡긴다는 사실이 어쩐지 불편하지만 당장 출근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아이가 낯도 가리지 않고 잘 따라는 것 같아 한번 맡겨보기로 한다. 전문 보모라고는 하나 이제 막 만난 낯선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도 불안한데, 그 대상이 조선족이라고 하니 걱정과 의심이 더욱 커진다.
 

영화 <첫번째 아이> 스틸컷 ⓒ (주)더쿱디스트리뷰션


02.
허정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 <첫번째 아이>는 육아휴직 후 사회로 돌아온 여성이 직장과 가정에서 겪는 무수한 딜레마로 의지할 곳도 제대로 설 곳도 찾을 수 없는 이야기를 그려내는 작품이다. 전작의 단편 영화들을 통해 돌봄이나 비정규직과 같은 사회의 사각에 놓여 있던 고질적인 문제들에 질문을 던져왔던 감독의 시선이 종합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첫 아이를 낳고 이제 막 사회로 돌아온 워킹맘의 시선을 극의 중심에 놓으면서 현대 사회에서 여성이 안고 가야 하는 부조리한 책임과 부정적 감정들을 드러내고 있다.

허정재 감독은 작품 속에서 자신이 바라본 사회적 문제, 여성의 경력 단절과 독박 육아에 대해 요즘 아이를 낳는 것이 정말 정답인가 하는 측면의 소지도 있다며 "영화를 보면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고 여성권을 추구하는 입장에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경제적 활동이라는 것이 이제 더 이상 단순히 재화를 획득하는 수단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자아 형성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어 "저출산이라고 해서 꼭 사회적 문제가 될 수는 없는 것 같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출산의 문제 역시 개인의 선택 문제이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동체 의식을 갖고 함께 돌봐줄 때 더 건강한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질 수 있다고 말이다.

03.
영화는 시작부터 정아가 회사와 육아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못하는 모습으로 불안을 드러낸다. 타인의 도움도 잠시의 안도일 뿐,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정아는 외부로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남편조차 이 모든 상황이 자신의 복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아이와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고 양육하는 문제는 오롯이 아내의 몫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 태도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지만 정아는 그 프레임 속에 더 맞춰내고자 한다. 표면적으로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실제로는 정아가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상황이지만) 육아와 관련한 모든 문제가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는 마당에 문제가 생기고 나면 어떤 말을 듣게 될지 뻔하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자가 아이를 데리고 연락도 없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남편 우석이 보이는 모습과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아의 태도가 이 모든 상황과 심리를 대변한다. 아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한 것은 아빠인데도 불구하고 당장 회사를 뛰쳐나와야 하는 것은 엄마다. 아빠는 회사에 급한 미팅이 있어 바로 들어가 봐야 한단다. 아이의 안전과 관련한 문제임에도 그 책임은 전부 엄마의 몫이다. 정아에게 선택권은 없다. 보모 화자와 아이는 한밤중이 되어 무사히 돌아오지만, 이 사건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일들에 대해 정아는 남편에게 말할 수 없다.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냐며 벌써 모든 책임을 전가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아이를 홀로 양육하는 일은 계속해서 문제를 낳는다. 이제는 더 이상 믿을 수가 없게 되어버린 보모 대신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해도 대기번호를 기다려야 해 당장 맡길 수가 없는 상황이고, 처음부터 아이를 봐줬던 303호 아주머니에게도 계속 부탁하기가 민망한 상황이다. 심지어 수유실에서 만난 한 아이 엄마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남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키우고 있다며 묘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지속적인 문제적 상황 앞에서 정아는 점점 지쳐가고, 되려 워킹맘을 선택했던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의심하게 된다.
 

영화 <첫번째 아이> 스틸컷 ⓒ (주)더쿱디스트리뷰션


04.
이 영화 속에는 다양한 여성 인물이 등장한다.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들 모두는 외적으로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다. 비단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정아만이 아니다. 계약직으로 겨우 회사에 발을 걸칠 수 있게 된 사회초년생 지현도, 타지에서 가족 모두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재중동포 화자도 마찬가지다. 정아의 딸인 서연이 매개가 되어 세 사람은 서로 연결되지만 극에서 이들이 놓여있는 자리는 멀리 떨어진 채로 각자의 자리를 당장 지키기에 급급하다. 이들 모두의 하루가 고고한 내일의 이상이 아니라 지난한 오늘의 현실에 놓여있다는 뜻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같은 맥락에서 세 사람 모두는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외부로 내거나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의 육아를 홀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떠맡고 야근을 하는 것이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출신이 개인의 성실함과 능력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들 모두는 사회로부터 떠넘겨지는 갖은 부정적인 시선과 대우, 처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그 행동의 목적이 무엇인가 더 획득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려놓기를 강요당한다.

05.
"사모님은 어떠세요? 요즘 괜찮으세요?

영화의 종반에 등장하는 정아와 화자의 만남에는 이전까지 그려졌던 영화 속 불안과 긴장을 해소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무엇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 역시 노력하고 있다고 강변하는 남편 앞에서 정아의 마음이 모두 무너져 내린 후의 만남이다. 화해의 의미는 아니다. 이 장면에 화해라는 단어를 가져다 놓기엔 조금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이 화자에게 갖고 있던 편견과 오해를 마주하게 된다.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아이를 데리고 연락도 없이 사라졌던 일과 일련의 사건에 대해 완전히 용서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자신 역시 막다른 길 위에서 지현에게 그랬듯이.
 

영화 <첫번째 아이> 스틸컷 ⓒ (주)더쿱디스트리뷰션

 
극 중에 놓인 문제들을 영화가 바라보는 시선 끝에는 인물들의 감정만이 남는다. 그에 대한 정확한 해답이 놓여 있지는 않다는 뜻이다. 당연한 일이다. 두 시간 남짓한 하나의 내러티브 속에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찾을 수 있을 리 없다. 다만 작은 실마리 하나는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서로를 돌봐주는 일이다. 영화의 중반에 화자가 한국 처음에 왔을 때 잘 몰라서 조금 두렵기도 하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여기에서 다시 떠오른다. 이제 처음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극 중 인물들이 놓인 상황 모두가 처음이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돌보는 일, 어쩌면 모두에게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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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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