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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원만..." 휴게소 떠돌던 가족, 행복이라 믿은 이유

[넘버링 무비 238] 영화 <고속도로 가족>

22.11.08 11:37최종업데이트22.11.0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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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속도로 가족> 메인포스터 ⓒ CJ CGV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2만 원만 빌려주시면 집에 가서 금방 계좌로 보내드릴게요."

허름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차려 입은 한 남자가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에서 방문객에게 돈을 빌리고 있다. 갑작스럽게 지갑을 잃어버려서, 차에 기름을 넣을 수가 없어서 집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그의 말. 부탁을 받고 난감해 하던 방문객 앞으로 이번에는 한 여자와 두 아이가 슬그머니 나타난다. 남자의 아내와 자식처럼 보인다. 거짓말 같기도 하지만 큰 돈도 아니고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방문객은 2만 원을 건넨다.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며 꼭 갚겠다는 남자, 그리고 가족이다. 잠시 후 네 가족은 휴게소 가장자리 벤치에 앉아 허겁지겁 컵라면을 먹는다. 방문객에게 받은 2만 원으로 겨우 해결할 수 있었던 오늘의 첫 끼다.

기우(정일우 분)와 그의 가족은 고속도로 휴게소 인근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낮에는 돈을 구걸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가족.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속 편한 소리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아침마다 휴게소 직원이 와서 텐트를 철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아이들을 씻기는 화장실에서는 눈치를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아내 지숙(김슬기 분)은 임신까지 한 상태다. 가족의 상황은 어느 날 영선(라미란 분)이 등장하면서 바뀌게 된다. 이미 가족들로부터 사기를 당한 바 있던 그녀가 이들 가족을 경찰에 신고하면서부터다. 다른 사기 전력이 있던 기우는 바로 그 자리에서 구속이 되고, 남은 가족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은 여행처럼 여러 휴게소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한 가족이 우연히 영선의 가족을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작품이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두 가족이 만나 서로의 빈 자리를 채우고 아픔을 위로해 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어디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던 고속도로 가족에게 내밀어진 유일한 선의와 어떻게든 그 기회에 기대어 보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 흥미로운 소재와 설정으로 눈길을 끄는 이 작품은 조금의 접점도 없는 두 가족이 만나는 과정을 통해 가족이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 스틸컷 ⓒ CJ CGV


02.
사실 이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 자체는 보편적인 편에 속한다. 문제를 겪고 있는 주인공과 어떤 과정을 통해 이를 돕게 되는 조력자. 돕게 된 일 때문에 벌어지는 큰 사건(위기)과 이를 딛고 주어지는 행복한 결말. 구조를 활용하는 방식이나 그 안에서 선택되는 소재나 설정이 다르기 때문에 겹쳐 보이지 않는 것뿐이지 다른 영화에서도 이런 식의 흐름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문제는 이 보편적인 구조를 어떻게 활용하고 표현해 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같은 도구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용도는 달라질 수 있고, 결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 여기에 있다. 보편적이면서 보편적이지 않은 것. 영화의 뼈대는 안정적으로 구조화한 상태에서 흥미로운 소재를 배치하고 이를 들여다보는 시선에 변주를 준다. 여기에서 극을 살리는 핵심은 시선에 있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은 인물과 상황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항상 경계 위에 둠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을 쉽게 하지 못하도록 유도한다. 가족의 가장인 기우를 바라보는 시선이 대표적이다.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가족을 길거리로 내몰면서도 달빛 아래에서 춤을 출 정도로 낙관적인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명백히 나쁜 쪽에 가깝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도, 임신한 아내를 도로 위에서 재우는 것도 모두 그의 선택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를 사랑하고 함께 행복해한다. 잠시도 아빠라는 존재를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영선과 도환(백현진 분) 부부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이 가족을 자신의 품으로 들이고자 하는 아내의 모습을 두고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고 남편 도환은 이야기한다. 몇 해 전 사고로 잃어버린 아들의 빈자리를 고속도로 가족의 존재와 그 아이들로 채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이들 가족을 돕고자 하는 영선의 마음과 행동은 분명히 선하고 옳은 쪽에 놓여있지만 영선의 가정에 놓여 있는 서브텍스트를 통해 영화는 이 지점의 문제 역시 단순한 모양으로 두지 않는다. 이처럼 옳고 그름, 선과 악의 경계 위에 놓여 있는 영화의 시선을 따르다 보면, 어느 샌가 자신이 믿고 있던 정의에 대해서도 조금의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03.
기본적으로 이 영화에서 영선이라는 캐릭터의 존재는 휴머니즘의 상징과도 같다. 낡은 중고 물품 가게를 운영하면서 자신도 그렇게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타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인물. 여러 이유를 차치하고 어쨌든 아빠를 잃어버린 가족 구성원에 손을 내미는 유일한 존재다. 하지만 구속된 남편을 잃고 경찰서 입구에 쪼그리고 앉은 나머지 가족에게 영선은 또다른 의미이기도 하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상이다. 서로 한 번도 떨어져 본 일 없이 자신들끼리만 뭉쳐 다니던 가족에게 영선은 '안정이라고 믿어야만 하는' 세상이 아니라, '제대로 안정된 세상'이다.

그로 인해 안정이라는 단어의 본 뜻을 직접 경험하게 된 지숙은 자신들이 떠나온 고속도로와 휴게소의 텐트 위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 하는 이유다. 단순히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는 아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해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지, 아이들에게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하는지 이제 정확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은이(서이수 분)와 택(박다온 분)의 불안정한 심리와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헤아릴 의지도 능력도 없는 아빠의 허황된 현재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영선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다. 점점 더 높은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들을 아빠의 그늘에서 땅만 바라보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지숙의 의지의 발현과 표현이 프레임 속에서 구체화되면서 영화도 이들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르게 가져가기 시작한다. 물리적으로는 경찰서에 끌려가 구속이 되는 사건, 의미적으로는 지숙이 영선의 세상에서 아이들을 키우고자 마음 먹는 순간부터다. 이 시점에서 가족의 구성원으로부터 아빠 기우를 분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기우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애매한 시선은 여기까지다. 가족의 건강한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엄마의 의지로부터 영화 또한 그녀와 두 아이를 구해내고자 한다. 그럴듯해 보이던 아빠라는 존재로부터, 또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길 위의 텐트로부터. 이제 고속도로 가족은 극에서 지워지기 시작한다. 의무를 저버린 채로 모두의 권리를 박탈하고 그것이 행복이라 믿도록 강요하고 세뇌하던 '고속도로'라는 단어가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이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 스틸컷 ⓒ CJ CGV

 
04.
이처럼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들여보고자 하는 부분은 확고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서로에 대한 관심과 온기. 영선이라는 인물의 선의로 인해 한 사람의 의지가 시작되고, 한 가족의 미래가 바뀔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마지막까지 자신의 세상을 놓지 못한 기우는 딸을 이용해 가족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자 하고, 모두의 보금자리를 무너뜨리는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죄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고속도로라는 단어를 지워낸) 가족이 그를 껴안을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는 모습을 보인다.

하나의 명확한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조금은 얕아 보이는 인물들의 사정이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일정 부분은 인물의 너무 깊은 내러티브와 감정선에까지 닿을 경우 후반부에서 무겁게 다뤄야만 했을 요소들의 톤을 고려했던 것으로도 보인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 앤 매너 자체가 그렇게 짙고 어둡지는 않도록 그려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가지 고민 사이에서 영화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힘은 분명 배우들의 진심이 담긴 연기에 있다. 이번 작품 속에서 기우와 지숙 부부를 연기한 두 배우는 특히 더 빛을 발한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영화는 끊임없이 제작되고 소개된다.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이지만 때로는 어렵기도 한 집단의 이름이 가족이며, 우리 모두가 평생 그 이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당연해서 이해할 수 없고, 또 너무 가까워서 노력할 수 없는 것들이 때때로 가족 사이에는 존재하는 것 같다. 최근 개봉된 바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가 그랬고, 또 이 영화 <고속도로 가족>처럼 보편적이지 않은 가족의 구성과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외적인 상황에서 바라볼 때 더 두드러지는 일상적인 것들이 있는 것처럼, 특수한 상황에서 더 깊이 건드릴 수 있는 속성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에도 분명히 놓여있을 테니까.
영화 고속도로가족 정일우 김슬기 라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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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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