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노바디즈 히어로>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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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조금은 긴 분량을 할애하여 영화의 초반부에서 그려지는 대강의 스토리 라인을 축약해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가지 사건이 이후 작품의 중후반에서 확장되고 수렴되면서 극을 이끌어가는 커다란 축으로 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메데릭과 이사도라가 관계를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남편 제라르의 개입으로 일종의 삼각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남자가 집 앞에서 만난 셀림을 수상한 인물로 여기면서도 자신의 집 안에 들이며 그 관계가 지속성을 띠게 된다는 점이다.
이 모든 상황은 때에 따라 장소를 달리 하기도 하지만 주로 메데릭의 아파트에서 벌어진다. 그 과정에서 아파트의 다른 호수에 살고 있는 이웃들의 개입도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되는데 이는 영화가 투영하고자 하는 다양한 관념과 현실을 조금 더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된다. 앞서 이야기한 두 개의 축으로부터 파생되는 에피소드 각각이 갈등이나 모순, 차별과 폭력 등의 사회를 붕괴시킬 수 있을 정도의 관념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메데릭이 살고 있는 아파트 공간은 하나의 사회 혹은 프랑스 사회를 축소시켜 놓은 자리라고 봐도 무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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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가로디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통해 냉철한 사회적 관찰을 극의 구조화된 세계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익살스러운 유머 코드에 있다. 이를 완성시키는 방법으로 차용하고 있는 방식은 모두 두 가지로, 그중 처음은 전복(顚覆)에 의한 권위의 약화다. 두 사람이 관계를 채 끝내기도 전에 헤어져야 하는 첫 만남의 마지막 순간에 남편을 따라 옷을 입고 나가는 여성과 여전히 침대 위에 누운 채로 이불로 다급히 자신의 몸을 가리는 남자의 모습은 전통적 관습의 연출에서는 분명히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여기에 돈을 지불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던져주는 돈을 오히려 받게 되는 메데릭의 입장은 자신이 되려 화대(花代) 받은 것과도 같은 상황이 되고 만다. 하루만 재워 달라던 셀림의 태도가 다음날 아침 급변하는 것도 이 지점에 속한다. 영화는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기존의 권위 체계를 일순 무너뜨리며 고정관념을 털어낸다. 인물의 밑바닥을 드러내며 사회와 매체가 울부짖는 인간의 고고함이 얼마나 얕은 것인지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그 다음은 양면성을 통해 드러내는 인물의 내면적 투영이다. 셀림이 잠깐 머물 수 있도록 해달라며 도움을 요청해 왔을 때 메데릭은 문을 열어주고 마른 옷까지 건네는 호의를 베풀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경계는 풀지 못한 채 경찰에 신고를 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테러리스트들의 몽타주와 셀림의 얼굴이 닮은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집에도 그를 들여보내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코딩 기술을 활용해 이메일을 해킹하는 모습도 보인다.
아파트 공간 전체로 놓고 봐도 마찬가지다. 정치적인 입장에서는 그의 건물 체류에 대해 반대입장을 보이는가 하면 반대로 인도주의적 입장에서는 도와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직접 돕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일종이 아이러니이지만 말이다. 영화의 중반부를 지나며 거리의 부랑아들로부터 공격받은 셀릭을 돕는 이웃들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안전을 살피며 도움을 주고자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왜 자신들의 집 앞에서 자꾸 이런 일을 벌이느냐고 그들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