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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영화 '탑건: 매버릭'의 야만과 오만

[김성호의 씨네만세 383] <탑건: 매버릭>

22.07.02 10:12최종업데이트22.08.1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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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 매버릭 포스터
탑건: 매버릭포스터롯데엔터테인먼트
 
끝내주게 재밌다.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이 하나 같이 엄지를 추켜올린다. 개봉 첫날부터 입소문을 탄 영화는 개봉 아흐레 만에 관객수 200만명을 넘어섰다. 올해 최고 흥행작도 충분히 넘볼 만한 속도다. 박스오피스 꼭대기에 올라 있는 <탑건: 매버릭> 얘기다.

<탑건>이 1986년 작이니 이번 영화는 무려 36년 만에 나온 속편이 되겠다. 이렇게 긴 시차를 두고 나온 속편은 할리우드 역사를 통틀어도 흔치 않다. <록키5>와 <록키 발보아>가 16년, <람보3>와 <람보4>가 20년, <매드맥스3>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30년의 시차를 뒀으니 36년의 무게를 짐작할 만하다.

주인공 매버릭은 그를 연기한 배우 톰 크루즈와 닮았다. 둘은 모두 환갑 가까운 나이의 현역이다. 그냥 현역도 아니다.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과 숙련된 기술을 모두 가진 위대한 파일럿이며 연기자다.

아직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때가 아니라며 돌아서는 매버릭의 뒷모습에서 스턴트 대신 직접 연기를 고집하는 크루즈의 자세가 읽힌다. 저보다 어린 상관들에게 파일럿은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밀려나는 매버릭의 모습에선 종교논란과 나이를 이유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하차할 뻔했던 크루즈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환갑의 청춘, 노장은 살아있다
 
탑건: 매버릭 스틸컷
탑건: 매버릭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러나 매버릭과 크루즈 모두 자신의 실력으로 모든 논란을 잠재웠다. 매버릭은 탑건으로, 크루즈는 연기로 당당히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섰다. 모두에게 응원받고 인정받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들이 해낸 업적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이 여전히 청춘이란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크루즈와 매버릭 캐릭터가 만나 이뤄낸 결과물은 훌륭했다. 절정에 오른 할리우드 기술력과 자본은 이전까진 이른 적 없는 전투기 액션을 구현했다. <덩케르크> 같은 영화가 그렸던 전투기 액션 역시 훌륭했으나 <매버릭>의 기술적 성취는 그를 훨씬 뛰어넘는다. 2차대전 시기 쓰인 전투기와 4, 5세대 전투기 간의 기술력 차이만큼이나 말이다.

<매버릭>을 본 관객은 영화의 기술력에 압도되고 만다. 1980년대 생들에게 <쥬라기 공원> 시리즈가, 1990년대 생들에게 초창기 마블 시리즈가 그러했듯 말이다. 만일 <매버릭>을 통해 영화를 처음 접한 이가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할리우드 키드가 되고 말 것이다.

영화는 할리우드 대작이 놓치지 않는 간명한 주제의식도 꼭 붙들고 있다. 하나는 무인 전투기에 대체될지 모를 조종사들이 위기상황에서 보이는 인간적 결정의 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동료들 간에 피어나는 우정과 신뢰다. 국경과 세대를 초월해 공감을 살 수 있는 이러한 이야기를 <매버릭>이 힘있게 전개해나가고 있기에 관객들은 기술력에 감격하는 한편 영화에 감동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엔 오만이 있다
 
탑건: 매버릭 스틸컷
탑건: 매버릭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러나 <매버릭>은 지금 개봉한 다른 어떤 영화보다 더 곰곰이 생각해봄직한 지점이 많은 영화다. 세계열강의 이해관계가 걸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한창인 이 시점에서, 일찌감치 미국이 폭격이 가능한 무인기를 타국 영공에서 운용하는 정책을 적극 써온 역사가 있다는 점에서, 그 폭격으로 사망한 타국 민간인만 최소 수천 명에 이른다는 기밀문서가 이미 폭로된 상황에서, 무엇보다 현실화되지 않은 위협을 이유로 타국 영토를 공격한 이력이 수차례 존재하는 미국이란 국가의 역사를 살펴볼 때 영화가 가진 오만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대선 이슈가 한창이던 올 1월, 윤석열 당시 후보자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선제타격을 언급하며 때 아닌 선제타격론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대응방안을 묻는 외신기자 질문에 미사일이 발사되면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며 선제타격을 언급한 것이다.

적극적 방위의 개념으로 선제타격이 언급되는 건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이 주체라면 더욱 그렇다.

미국은 제3국의 핵위협에 대한 대응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최소 수십 차례 당사국 동의 없는 위협국 선제타격을 검토한 바 있다. 한반도도 그들의 주된 무대다. 1994년 있었던 1차 북핵위기 때 빌 클린턴 행정부가 영변 핵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식 정밀타격을 검토한 일이 있었다. 미군을 포함해 예상되는 희생이 너무 크다는 반대 끝에 폐기됐으나 이후에도 미국은 수차례나 선제타격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 정부와 선제타격안과 관련해 사전 논의를 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카타르시스 뒤에 숨겨진 야만성에 대하여
 
탑건: 매버릭 스틸컷
탑건: 매버릭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2003년 미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거짓정보 아래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2020년엔 이란의 장군 카셈 솔레이마니가 외교관 자격으로 이라크를 방문했다가 미군 폭격으로 사망했다. 솔레이마니가 탄 차에 미국이 자랑하는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한 건 오바마 행정부부터 적극 활용돼 온 무인기였다.

두 사건 사이 미군은 확인된 것만 수십차례에 달하는 폭격을 타국 영토에서 자행했다.

<매버릭>에서 탑건이라 불리는 최정예 전투기 조종사들은 외딴 곳에 있는 핵시설을 향해 전투기를 몰아간다. 분명한 건 해당 시설이 미국이 아닌 타국 영토란 것이다. 심지어 그곳 공군기지엔 미국이 팔아먹은 4세대 전투기 F-14가 버젓이 놓여 있다. 미국은 자국 주력 전투기 시리즈를 우방에만 판매하는데, 한때 우방이었던 나라의 영토를 선전포고 없이 선제 폭격한다는 설정이 섬뜩하기까지 하다.

더욱 충격적인 건 영화에 등장하는 F-14 기종을 공식 수입한 대표국이 사망한 솔레이마니의 조국 이란이란 점이다. 한때는 미국의 우방이었으나 외교사절로 파견나간 자국의 영웅이 이라크에서 폭사하는 모습을 무력하게 목격해야 했던 이란인들이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 될지 자못 궁금하다.
 
중국과 러시아를 향한 경고?
 
탑건: 매버릭 스틸컷
탑건: 매버릭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한편 영화는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한 공개 저격으로 보이기도 한다. 도입부에서 일본과 대만 국기가 선명히 새겨진 가죽재킷을 카메라 정면에 내보인 영화는 적진 깊숙하게 들어온 탑건들과 맞서는 상대국 전투기의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들 5세대 전투기 모양은 노골적으로 러시아의 수호이 시리즈 특정 기종과 닮아 있다. 심지어 이들 전투기의 특정 기동이 영화 속에서 유사하게 재연되는 모습까지 있어 이같은 해석에 힘을 싣는다.

중국은 러시아 수호이35를 구입하고 이 디자인과 비슷한 자국 전투기 시리즈도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영화가 러시아와 중국을 적국으로 염두하고 제작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무리하지 않다.

무엇보다 미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활발하게 타국 영토에서 폭격이 가능한 무인기를 적극 활용하는 국가다. 오폭으로 수천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음에도 이를 포기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는 오폭으로 사망한 민간인 수십명을 테러리스트로 보고했다가 발각된 사례까지 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선 낭만이 가득한 인간 조종사가 성조기 문양이 새겨진 헬멧을 쓴 채 구형 전투기를 몰고 적진으로 나아간다. 이를 요격하려는 첨단 전투기와 무인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야말로 미국의 상징이 아니던가. 이 같은 배경지식을 알고 영화를 본다면 <매버릭>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영화의 얼개는 분명하다. 미군이 운용하는 전투기와 미사일이 선전포고 없이 타국 국경을 넘어 군사시설물을 폭격한다. 이들은 자국 영토를 방위하려는 군인들을 사살한다. 그리고는 마치 스포츠경기에 이겼을 때처럼 환호하고 자랑스러워한다. 미국의 확고부동한 동맹국의 국민이자 여전히 전쟁 위험을 안고 사는 나라의 시민이기도 한 우리는 단 한 번이라도 그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보아야 한다. 그것이 이 영화를 보고 환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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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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