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스>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그러나 <이터널스>를 한 편의 MCU 영화로서 철저한 실패작으로 내몬 것 역시 바로 이 기억과 초월성에 대한 부분이라는 점이 영화의 최대 아이러니이다. 수천 년간 인류의 곁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때로 영감을 선사하며 함께한, 누구보다도 인류를 사랑한 수호자들이라는 플롯은 그간 마블 스튜디오가 지향해 온 현실적 영웅 이야기와는 괴리가 크다. 그것은 오히려 고전적 신화, 혹은 마블의 라이벌인 DC 확장 유니버스가 지향하는 영웅관에 가깝다.
당장 DC 유니버스 속 아마존, 아틀란티스인들의 이야기와 이터널스의 플롯을 훑어본 뒤 그 유사성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존의 MCU 세계관에서도 은하계의 아홉 왕국을 수호하는 아스가르드의 오딘과 같은 이들이 있었으나 이들은 어디까지나 고도로 발전한 행성의 외계인이었으며, 인간에 비할 수는 없으나 수명 역시 존재했다. 그런 점에서 불멸의 우주적 존재인 셀레스티얼과 이터널스의 이런 방식의 등장은 기존의 MCU 시리즈의 입장에서 비일관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인피니티 스톤과 타노스라는 전 우주 절반의 생명이 달린 초유의 사태를 이미 경험한 인피니티 사가 이후의 세대를 그리는 현재의 MCU 세계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라면 기존의 가치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수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히어로들이 앞으로 부닥치게 될 새로운 적들은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우주적 존재들일 것이고 그런 이들과의 지속적 충돌이 주요 이벤트로 제시되는 한 초기 MCU가 지향하던 현실적인 신화는 더 이상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가치의 변화를 위해서라면 적어도 2시간 반짜리 한 편의 영화가 아닌 하나의 페이즈 전체를 할애해서라도 설득력있는 시대의 변화를 제시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세계관의 우주적 확장과 새로운 이야기로의 도약을 꿈꾸던 스튜디오와 클로이 자오의 '야심'은 빌드업이 부재한 급격한 변화 속에서 마치 DC 확장 유니버스가 초기 작품들에서 밟았던 것만 같은 전철을 그대로 밟는 '아집'으로 기능하고 말았다.
이터널스 (2021)
감독: 클로이 자오
제작: 케빈 파이기
출연: 젬마 찬, 리차드 매든, 안젤리나 졸리 외
별점: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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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글을 씁니다. 주로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과 이 시대에 필요한 대중문화에 대해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