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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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토록 비대했던 야심에 비해 영화가 시네마적으로도, 유니버스 내의 이벤트로서도 보여준 가능성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빈약한 심리묘사 및 각본과 밋밋한 액션 연출, 인물 소개만으로도 버거울 정도로 타이트한 전개 방식, 수습되지 못한 채 찝찝함만 남기는 맥거핀의 활용 등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면 인피니티 사가가 진행되는 23편의 영화 동안 마블 스튜디오가 고수해 온 최우선의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을 것만 같은 신화 이야기"라는 타이틀이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버렸다는 점이다.
셀레스티얼의 지휘 아래 지구에서 7천년을 숨어 살아온 이터널스라는 초월적 존재를 묘사하기 위해 클로이 자오는 우리가 첫 문단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기억'의 메타포를 이용한다. 말하자면 이터널스는 인류의 오랜 문명 전체를 '기억하는 자들'이다.
아즈텍에서 바빌론, 1945년의 히로시마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늘상 인류의 곁에 존재하며 오직 그들을 위협하는 우주적 존재인 데비안츠 관련 분쟁에서만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자들이었다. 이러한 이들의 신비함과 초월성을 드러내는 데 있어 기억이라는 소재는 매우 훌륭하게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억의 오류로 인해 폭주하게 된 테나와 그의 리셋(기억 제거)에 대하여 논하는 장면은 그런 점에서 클로이 자오 다운, 매우 탁월한 연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