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철거민들과 함께 한 노회찬 전 의원.
명필름-노회찬재단
장편 다큐멘터리를 편집하는 일이 처음임에도, 감독님은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묻고, 듣고, 같이 방법을 찾고자 했다. 나도 덕분에 이런 과정을 조심스러워 하지 않고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1막에는 87년을 맞닥뜨리게 된 인민노련(노동운동조직)의 조직가 노회찬이 정당을 만들고, 나아가 민주노동당의 사무총장으로서 활약을 하게 된 스토리를, 2막에서는 아내인 김지선님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보여주는 인간 노회찬, 그리고 그런 그가 부딪혀야 했던 현실정치의 벽과 이를 돌파해가려는 노력과 실패, 3막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밑으로 내려가 계속해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진보정당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던 공적이고 사적인 인간 노회찬으로 그 구성이 정해졌다.
노회찬 전 의원이 거쳤을 크고 작은 선거의 승패 순간을 어떻게 변주할지, 그를 둘러싼 외적인 한국 정치의 상황과 그가 실제로 가고자 했던 진보정치의 길, 뒤따르는 내적인 어려움을 어떤 순간에 보여줄지에 대한 선택은 구성의 측면에서 감독님이 여러 차례 고민하고 신경을 쓴 부분이었다. 단순히 한 사람의 삶을 정치활동이나 사건 중심으로만 나열하는 방식을 피한 시도가 오히려 노회찬 전 의원의 삶을 더 잘 보여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종종 편집이 어려워 혼자 머리를 잡아 뜯을 때도 많았지만, 그보다 좋았던 순간들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영화의 편집본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가고 있던 무렵, 노회찬 전 의원의 아내인 김지선님 댁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김지선님은 우리 제작진을 따뜻하고 편하게 대해주셨다. 그 자리에서 노회찬 전의원의 어린 시절부터 기록된 모든 앨범사진을 함께 보는 일은 정말 소중했다. 상상만 해왔던 그의 아이 때 모습부터 장난스러운 고등학생 때의 모습들, 결혼식 사진들, 그가 아내를 위해 직접 편집하고 제작한 포토북들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를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 작업을 시작한 나는 그가 나오는 수많은 영상과 자료를 마주하면서 여러 생각과 복합적인 감정이 쌓여갔다. 그럼에도 노회찬이라는 사람이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 앞으로도 나는 그를 실제로 만날 기회가 없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슬펐다.
하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그와 아주 가까웠던, 고민을 함께 나눴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단순히 영화를 만드는 작업 외에도 아주 중요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건 영화를 공부하는 나에게 있어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마주친 모든 사람들은 누가 노회찬에 대해서 더 잘 기억하느냐, 오래 알았느냐, 잘 아느냐를 중요해하지 않았다. 각자가 기억하고 생각하는 노회찬과 그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고, 또 듣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영화도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과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회찬과 낡은 가방
다큐에는 나오지 않지만, 인터뷰에 기록된 이종수님(운전수행 보좌관)이 들려준 일화 중에는 가방 이야기가 나온다. 노회찬 전 의원은 정말 오래된 가방 하나를 의원활동 내내 들고 다녔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 노동조합에 강연을 한 뒤, 조합에서 미처 강의료를 준비하지 못해 기름값이라도 하시라며 소정의 교통비 20만원을 주었고, 이종수 보좌관이 강의료 기재를 마친 후, 노 의원께 건네자 자신은 괜찮으니 쓰고 싶은 데에 쓰라며 그 강의료를 도로 줬다고 한다.
이종수 보좌관은 노회찬 전 의원의 낡은 가방이 눈에 밟혀 그 돈으로 새 가방을 샀다고 한다. 여의도 근처의 작은 노점상에서 산 가방 선물을 받은 노 전 의원은 자신이 노동자들을 대변해서 일을 하고 다니는 사람인데 이런 좋은 가방을 들고 다니면 안 될 것 같다며 곤란해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물이기에 한두 번 정도 들고 다니셨고, 결국 이종수 보좌관이 노 의원을 보좌할 때 대신 들고 다녔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노 전 의원은 같이 다니는 사람이 좋은 가방을 들고 다니니 보기 좋다며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정작 본인은 그 오래된 가방을 사용하셨단다.
이 일화를 처음 읽었을 때, 43명의 인터뷰이가 모두 입 모아 말하던 노회찬 전 의원의 소박함과 동료를 생각하는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자신의 개인적 만족감보다는 더 많은 타인들과 같이 가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사소한 것에 있어서 동료를 아끼는 그의 은근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마음이 저려왔다.
약 11개월 동안 다큐를 만들며 노회찬 전 의원과 함께 했음에도 나는 여전히 그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동료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의 마음, 노동자·국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자 했던 한 사람의 꿈과 노력, 진심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영화를 볼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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