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과를 졸업하고 계속 영화를 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학원 입학을 앞두던 2020년 가을 무렵, 고 노회찬 전 의원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다. 보통의 또래 20대가 그러하듯 정치에는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했고, 고작 내 주변에 일어나는 화젯거리에 귀기울이며 싱거운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였다.
다큐멘터리 <노회찬 6411>의 감독을 맡은 민환기 감독님은 내 지도교수님이기도 했고, 전 작품인 <청춘선거>를 함께 한 인연이 있다.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실제로 많은 것을 배웠기에, 처음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을 때 걱정보다는 기회라는 생각이 앞섰다.
부끄러운 얘기이지만 나는 사실 노회찬이라는 인물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그랬기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간 노회찬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다큐멘터리의 조연출로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일은 재단에서 제공한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 영상을 보는 것이었다. 먼저 프로젝트에 합류해 있던 김지수 조감독님과 영상을 나눠서 보는 것임에도 그 분량이 어마어마했다. 2000년 초반부터 2010년대까지 쫓아가야 할 사건과 모습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가장 나중에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된 스텝이었는데 영상을 보면서 그에 대해 공부를 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것도 연대기 순이 아니라 무작위로 모아져 있는 영상의 순서를 정리해 가며 봐야 했는데, 이 과정이 그를 알아가는 내 나름의 방식이 되었다.
당시 김지수 조감독과 '눈과 귀에서 피 나겠다'는 우스운 농담을 주고 받기도 했는데, 그만큼 단기간에 집중해 영상로그를 정리했다. 그리고 그 작업이 끝났을 때는 정말 두꺼운 책 한 권이 완성되었다(그즈음에는 노회찬 전 의원이 강연에서 어떤 레퍼토리를 꺼내 얘기할지 맞출 수준이 되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타임라인이 정리되자 '이제 좀 준비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