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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뒤통수 맞은 듯... '미나리' 보고 화가 난 이유

[리뷰] 고정관념 깬 디렉팅과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인 영화

21.03.19 15:14최종업데이트21.03.1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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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 포스터 ⓒ 판씨네마


영화계에 관심을 두지도 않고 있었던 지난해 말부터 영화 <미나리>의 이름이 자주 귓가에 와 닿았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한인 이민자의 이야기를 담아 만든 이 영화에는 역시 한국계 미국인인 배우와 우리나라에서 날아간 한국인 배우들이 출연했다고 했다. 그런 영화가 넓은 미국 땅에서, 그 넓이 만큼이나 많은 수의 영화제에서 그 작품성을 인정받는다는 소식이었다.
 
나름 '국뽕'의식이 차올라, 영화 트레일러와 배우·감독의 인터뷰, 영화에 열광하는 미국인들의 예찬성 기사를 찾아보고 나니 영화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졌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미나리를 개봉한 3월 초까지 영화의 수상 소식들이 가열차게, 지속적으로 들려오지 않았나.
 
영화에 대한 나의 기대는 이런 것이었다.
 
1. '<기생충>처럼, 풍부하고 선명할 것이다'

현재의 <미나리> 현상은 작년의 영화 <기생충> 신드롬을 데자뷔로 떠올리게 하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영화도 <기생충>과 같은 면이 있을 것 같다는 예상을 하게 되었다. 즉, 이 영화 또한 확실하고 풍부한 내러티브를 제공하고 미장센과 촬영기법의 구성 또한 매우 '알찬'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이 작품이 흔히 상상하는 할리우드 영화가 아닌 줄은 알고 있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 윤여정이 한 인터뷰에서 "브래드 피트가 운영하는 회사의 작품이라고 해서 돈도 많이 주고 상황도 편할 줄 알았더니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영화는 독립 영화로서 그 '독립성'을 오롯이 지켰다고 했으니 설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기대했을까. 그럼에도 이렇게 큰 찬사를 받을 정도면 어느 정도 영화적 요소의 풍성함이 있을 거라 예상했고 그와 더불어 대중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만큼은 매우 선명할 것이라 생각했다.
 
2. '윤여정의 할머니 연기는 주저없이 통통 튀는 것이 그 매력일 것이다'

트레일러에 예고된 영화 속 그녀는 일반 할머니의 후덕한 모습이 아니었고 고스톱과 레슬링을 좋아하며, 명랑하고 위트가 넘쳐 전형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영화 속 손자인 데이빗(앨런 킴 분)조차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같지 않아요"라고 불만을 토로했고 많은 매체들이 그녀의 연기에 '윤여정만의 할머니'라 보도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정말 그럴 줄만 알았다.
 

영화 <미나리> 속 할머니 '순자'가 아이들과 함께 고스톱을 치는 장면 ⓒ 판씨네마

 
영화 관람 후 화가 난 이유는 위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기 때문이었다.
 
우선, <미나리>엔 최소한의 요소만이 존재했다. 배우, 세트 등 물리적 요소 뿐 아니라 이야기에도 군더더기가 없었다. 앞뒤 설명하느라 부수적인 복선이 무수히 많이 존재하는 숨 쉴 틈없는 전개와는 차원이 달랐다. 감독은 딱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물론 적은 예산의 독립 영화라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어쩜 이렇게 미니멀 할 수 있을까. 음악이든 영화든 소설이든 채워 넣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하던데 이 영화는, 이 감독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점임을 깨달았을 때 도대체 나는 왜, 많은 상을 타는 그 작품성을 인정받는 영화라고 해서 왜 모두 <기생충>스러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감독은 자신의 어렸을 적 실제 있었던 이야기 몇 가지를 툭, 던져 놓는 방식으로 전 세계인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마법과도 같은 일이었다.
 
윤여정의 연기에 대한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물론 그녀가 구현해 낸 할머니가 전형적이지 않은 것은 맞다. 통통 튀는 매력과 명랑한 기운을 데이빗의 가족에게 그리고 스크린 전체에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의 그의 연기에 관객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녀의 연기에서 떠나간 엄마를 떠올릴거라고는. 손수건도 준비 못한 상황에서 그녀의 연기에서 그렇게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될 줄은, 나는 몰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크한 할머니'로 꼽히는 배우 윤여정이 연기하는 할머니에게서 진한 모성애와 아련한 아픔을 느끼게 될 줄은 진정 난 몰랐단 말이다.
  

영화 <미나리> 속 윤여정은 전형적인 할머니 캐릭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 판씨네마

   
배신감마저 느꼈다. 이렇게나 미니멀한 영화로 이렇게나 풍부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다니, 돈을 많이 들인 영화들은 얼마나 배가 아플 것이며 그저 잔잔한 가족의 이민 정착기를 기대한 대중들은 얼마나 격한 심정에 빠져들 것인가.
 
이 글의 제목에 화를 냈다고 말한 것은 독자들을 훅(hook)하기 위해 일부러 쓴 표현이 아니다. 진정, 나는 가벼운 수다나 떨려고 만난 친구 앞에서 깊은 속마음을 들키고 보이고 싶지 않던 눈물을 펑펑 쏟아낸 것과 같은 민망한 감정으로, 영화관을 나오며 진정 화가 났다. 왠지 진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영화와 자신의 삶에 대한 감독의 순수한 애정에, 억지스러운 혼신보다는 자연스런 감정 전달에 몰두한 배우의 열연에 나는 그만 발목을 잡히고 만 것이었다.
 
'국뽕'으로 시작한 나의 <미나리> 관련 서치는 영화를 본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아카데미 시장식 6개 부분의 후보로 오른 이 명작이 상을 타든 말든 나는 이 어리둥절하고 혼돈스러운 감동을 오랜 시간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영화에 화가 나고 배신감을 느끼게 한 근본 원인이었던 바로 내 마음 깊은 곳, 이제는 좀 자제해보려 했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지긋지긋하고 끈적한 가족애를 이 영화를 통해 좀 더 오랜 시간, 뭉근하게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영화 미나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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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엄마가 있었다> 작가. 소중한 일상, 인생, 노후 등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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