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윈저 이야기> 포스터
넷플릭스
영화의 맨처음,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역사적 사실 한 가지가 신중히 환기된다. 영국 왕실 윈저는 영국인이 아니라 독일인(하노버 왕가의 직계후손)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을 만든 장본인 빅토리아 여왕은 독일 하노버 왕가의 딸로서 말하자면 '독일인 중의 독일인'이었다. 그녀의 남편 알버트 공도 독일인이었다. 여왕의 후임 에드워드7세는 독일-덴마크 혼혈 여성을 왕비로 맞았다. 그들이 낳은 아들이 윈저 가문의 창시자 조지5세다. 그는 독일여성과 결혼해 가족을 이뤘다. 이를 두고 한 여성 역사가는 말한다. 비록 조지5세가 영국에서 윈저 왕조를 연 사람이지만 윈저 왕조엔 "엄밀히 말해 영국인의 핏줄이 거의 없다."
혈통이 독일계임을 명시하듯 조지5세의 성(姓)은 '작센코부르크고타'였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 중, 왕의 성이 문제가 될 만한 대형 참사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1917년 6월 런던이 폭격을 당했는데, 폭격 전투기에 '고타'라는 왕조의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18명의 어린이와 162명의 런던 시민을 살해한 침략자가 '작센코부르크고타'와 동일 계열로 드러난 것이다. 이에 조지5세는 자기 성을 갈고, 왕조의 이름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국왕이 국민에게 큰 분노를 사면 왕조 자체가 위험해질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때마침 열렬한 군주제 지지자 스탬보덤 경이 나선다. 그는 지난한 궁리 끝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단어 윈저(Windsor)를 조지5세에게 헌정한다.
윈저를 차용함으로써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독일 냄새를 성공적으로 지운 조지5세는, 영국 국민들에게 인기를 끌고자 여러 시도를 하기 시작한다. 조지5세는 하고 싶거나 할 수 있는 것들보다 해야 하는 것 즉 '의무'에 초집중했다. 국왕이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는 공장에 방문해 노동자들을 만났고, 탄광 갱도에 내려가 광부들과 기꺼이 악수를 나눴다. 이때까지 유럽의 그 어느 전제군주도 시도하지 않던 행동이었다. 영국 국민들은 국왕의 손을 맞잡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흥분했고 환호했다. 조지5세의 인기는 상승가도를 달렸다. 그의 아들 데이비드 왕자도 인기에 한몫을 톡톡히 보탰다.
사실 조지5세 재위 당시는 왕조의 입장에서 볼 때 살벌한 시대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왕조가 멸망하거나 해체됐다. 하지만 조지5세의 윈저 왕조는 예외를 만들어냈다. 어느 틈엔가 영국인들은 전쟁 후유증의 극복과 재활의 구심점으로 국왕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지5세가 매우 강력한 지도력과 통치권을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입헌군주국가였던 영국에서 국왕은 카리스마있게 국정운영을 주도할 필요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그는 온 국민에게 인기를 얻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윈저 왕가가 언제나 국민에게 인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사태들이 드문드문 일어났다. 그럴 때면 윈저 왕가는 그 사건과 사람을 멀리 했다. 그 최초의 사례가 러시아의 전제군주 짜르(Tzar)였다. 조지5세의 사촌으로서 공산혁명 이후 영국망명을 기정사실로 신뢰했던 짜르는 졸지에 망명을 거부당하고 러시아에서 죽음을 맞았다. 짜르는 망명불허를 영국 수상의 방해공작으로 알고 죽어갔지만, 사실은 조지5세가 주도한 것이었다. 전제군주와의 연관 자체를 끊으려는 의도의 표현이었다. 다큐멘터리는 백여 년 전 조지5세의 망명불허 의중을 담은 비밀서신을 짜르의 후손에게 보여준다. 그녀는 조지5세의 배신이 너무나도 서글퍼서 말을 잇지 못한다.
세월은 흘러, 윈저 가문은 현재 엘리자베스2세 여왕으로 대표된다. 여왕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성이 아닌 어머니의 성 '윈저'를 따른다. 온 가족 페미니스트라서일까. 아니다. 윈저라는 이름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도 은근히 지적하지만 여왕이 이끄는 윈저 왕가는 '국민 엄마, 국민 며느리, 국민 동생' 등의 느낌을 풍기고자 물심양면으로 노력하는 연예인 같아 보인다. 여왕은 화려한 예식 이벤트에 주역으로 참여하고, 각종 대외활동을 통하여 위대한 영국(Great Britain)이라는 화사한 국가 이미지를 대변한다. 또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아무 의견을 내지 않으며, 국가의 대내외 정책에 대한 심의 및 결정 권한을 욕망하지도 않는다. 단 국민 대중의 사랑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활동에는 열심을 낸다. 왕자들, 며느리들도 그 대열에 합류한다. 제대로 꾸민 여왕의 가족들이 발코니에 나와서서 손 흔들며 인사하는 사진이나 영상은 전세계 시민들의 대단한 구경거리다.
가만 보면 여왕은 왕실의 인기가 낮아지지 않도록 상당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다. 인기가 낮아져서 대중들에게 잊히면 왕실 무용론이 나올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 반면, 인기가 너무 높아지는 것에 대해서도 신경을 쓴다. 너무 낮은 인기도 독이지만, 너무 높은 인기도 독이다. 실제로 데이비드 왕자, 다이애나 왕세자비 같은 인물은 각각 당대에 연예인 못지않은 대대적인 인기를 누렸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독으로 작용했다. 대중의 지나친 관심은 왕실에 대한 비현실적 기대로 상승해 정작 왕실이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왕실 무용론을 촉진시킬 수 있다.
한번은 윈저 가족이 일상생활을 대중에게 공개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들은 언론의 독성을 요령있게 피해야 한다는 것을 학습했다. 대중은 왕가에게 아주 좋은 인상을 받았지만, 더 많은 사생활 공개를 원하게 되는 부작용을 유발했던 것이다. 그래서 연애, 결혼, 출산, 불륜, 이혼, 재혼 등의 가정 대소사에 대해서 윈저 왕가는 조심, 또 조심한다. 이젠 영국 국민뿐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이 왕가의 결정과 선택에 호기심을 표하는 시대가 되었기에, 더욱더 신중하게 행동한다.
옛날에 국왕들은 나라를 지혜롭게 다스려야 했다. 그렇지만, 현재 영국 왕실은 가족들을 둘러싼 대중적 인기를 지혜롭게 조절하는 문제를 중점과제로 다루는 것 같다. 허나 우리가 잘 알다시피 대중적 인기라는 건 누구도 제대로 예측할 수가 없다. 매우 변덕스럽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윈저 왕가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대중의 인기를 백 년 동안이나 잘 지켜왔다. 그 과정에서 어둠의 기술이 한층 더 노련해졌음은 물론이다. 이를 두고 다큐멘터리는 "운이 좋았다"고 평가한다.
70년 재위를 눈앞에 둔 1926년생 엘리자베스2세는 올해 95세 생일을 맞이한다. 지금 여왕은 매우 건강한 상태지만, 윈저 왕가는 아마도 내부적으로는 '다음'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부정적인 스캔들을 생산해온 일흔 노인 찰스 왕세자가 '다음'을 잘 맡아줄까? 흥미롭게도 다큐멘터리는 찰스 왕세자가 윈저 왕조의 창시자를 빼닮았음을 지적한다. 찰스 왕세자는 윈저 왕가의 창시자(조지5세)가 국민의 지지—대중적 인기를 다지고자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잘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실천했다.
예를 들어, 찰스 왕세자는 과거 조지5세가 그랬듯 왕가의 숫자를 직계가족에 한정함으로써 왕실이 비대하다는 불만을 제압했다. 하여 사람들은 찰스의 직계후손 외에는 누가 왕자인지 공주인지 모르게 됐다. (두 장의 사진을 비교해보라. 바글바글했던 왕실 식구들이 두 번째 사진에선 통째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