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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 안 했으면"... 우울하기만 한, 2020년 전망

[하성태의 사이드뷰] 영화계 잠식한 디즈니와 CJ, 그리고 극에 달한 스크린 독과점

19.12.28 10:04최종업데이트19.12.2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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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작만큼 이 영화도 정말 좋았다. 개인사업자가 되면 돈도 더 벌고 가족들 형편도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개인사업자가 된 택배기사 리키네는 더 어려워진다. 더 공고해진 시스템은 개인사업자, 하청업자들을 아예 글라인더에 갈아버리듯 한다.

가족 인물들 묘사도 허투루 소비하지 않고, 이야기는 숨 가쁘게 직진한다. 차마 외면하고 싶은 눈물이 아니라 현실 직시와 공감의 눈물이 터진다. 사람들이 띄엄띄엄 상영관을 찾아서라도 좀 더 봤으면 좋겠다."

명필름 심재명 대표가 26일 본인의 소셜 미디어에 올린 <미안해요, 리키>에 관한 글 중 일부다. 심 대표는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이은 3년 만의 신작인 <미안해요, 리키>를 소개하며 "사람들이 띄엄띄엄 상영관을 찾아서라도 좀 더 봤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기생충>과 함께 올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미안해요, 리키>는 심 대표의 단평대로 "현실 직시와 공감의 눈물"을 겸비한 영화다. 이제 막 택배기사로 일하기 시작한 리키의 고된 일상은 플랫폼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네 현실에 대입해도 무리가 없다(관련 기사 : 열심히 일할수록 계속 피폐해지는 삶... 우리라고 다를까 http://omn.kr/1m274).

게다가 '1대 99 사회'와 '20대 80 사회'를 두고 격렬히 논쟁 중인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이, 노동자들이 '좀 더 봐야' 하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그건 <미안해요, 리키>가 가리키는 영화 내외적인 풍경 모두에서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근로빈곤층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영화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 영화사 진진

 
<미안해요, 리키>의 상영 환경 역시 영화 속 리키나 한국사회의 '99'나 '80'에 속한 개인사업자나 하청업자의 삶이 그러하듯, 전작이 개봉했던 3년 전과 달리 더 나빠져 있었다. 그래서다. 사실 심 대표에 글에서 이 대목이 더 눈길을 끈 이유는.

"켄 로치 감독의 <미안해요, 리키>는 어제로 1만 9천여명이 보았다. 2016년 개봉한 그의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10만여 관객이 들었었다. <미안해요..>가 전작을 따라 잡는 스코어를 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 몇 년 만에 '천만영화'의 흥행 속도는 곱절로 빨라졌고, 그때 10만 볼 영화들이 이제 1만, 2만이다. 볼 영화는 알아서 다 본다는 헛소리는 안 했으면 좋겠다."

3년 전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현재 <미안해요, 리키>의 처지

3년 전 박스오피스와 지금을 비교해 보자. 2016년 12월 8일 개봉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개봉일 하루 63개 스크린에서 총 138회 상영되며 1876명의 관객을 모았다(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이하 동일). 일일 3천 명을 넘긴 개봉 첫 주 주말을 제외하고, 개봉 2주차부터 40~50개 스크린, 100개 안팎의 상영 횟수란 배급 조건이 점차 줄어갔다.

다만, 최종 9만 5천이란 흥행 성적은 이듬해 2월까지 장기 상영한 결과다. 칸 황금종려상이란 프리미엄과 함께 독립예술영화관 위주로 입소문은 물론 상영 중후반 공동체 상영이 결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미안해요, 리키>의 사정은 분명 나빠졌다. 지난 19일 개봉일 하루 <미안해요, 리키>는 69개 스크린에서 총 116회 상영됐고 일일 관객수는 2717명이었다. 이후 첫 주말임에도 오히려 스크린 수와 상영 횟수가 줄었다. 관객층이나 상영 조건은 판이하지만, 어쨌든 12월 셋째주(51주차)는 대형 국내배급사 작품인 <백두산>과 <시동>이 나란히 개봉한 주였다.

그러자 개봉 2주차 <미안해요, 리키>의 상영 스크린과 상영 횟수도 쪼그라들었다. 개봉 8일차인 26일 스크린 수는 49개, 상영 횟수는 56회였고, 누적 관객수는 1만9381명이었다. 심 대표의 예상대로, 지금과 같은 상영 조건과 누적 관객수로는 전작의 9만 5천 명에 도달하기란 언감생심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27일 오후 2만 관객을 돌파한 이 영화가 내년 2월까지 장기상영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물론, 독립예술영화의 흥행도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전작과 비교해, <미안해요, 리키>는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이란 프리미엄이 없다. 반면 독립예술영화치고는 적지 않은 관객 수인 1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전작의 후광 효과를 누리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더불어 세계적인 거장 켄 로치 감독의 영화가 배우의 이름값이나 소재의 영향을덜 받아왔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연말연시를 겨냥해 배급 스케줄을 잡은 <미안해요, 리키>가 "그때 10만 볼 영화들이 이제 1만, 2만"이라는 심 대표의 한탄처럼 시작부터 쪼그라든 스크린을 확보한 것 자체가 독립예술영화 배급 상황의 심각함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랄까. 

어쩌면 <미안해요, 리키>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인지 모른다. 국제영화제나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음에도 초라하게 극장 개봉을 마친 한국 독립예술영화가 어디 한 두 편이던가. 그렇다면 '천만영화'만 5편을 배출한 올 한 해 상업영화 배급 시장은 사정이 어땠을까.

'흥행 대박이 비수기에 터졌다'는 속 모르는 소리
 

영화 <어벤져스 : 엔드게임>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먼저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의 개봉을 앞둔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이하 디즈니)의 영화들을 보자. 올 한해 디즈니의 '천만영화'는 <어벤져스:엔드게임>, <겨울왕국2>, <알라딘> 총 세 편이었다.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극한직업>과 <기생충>을 제외하고 '천만영화' 총 5편 중 3편의 이름을 올렸으니, 올 한 해는 가히 '디즈니 천하'였다. 그 중 뒷심을 발휘한 <알라딘>을 제외하고 <어벤져스:엔드게임>과 <겨울왕국2>는 스크린 독과점 논란의 선봉에 섰던 영화들이기도 하다.

여기에 올 해 박스오피스 10위권 진입이 유력한 <캡틴마블> 역시 디즈니(마블) 배급 영화다. 이를 두고 <영화 배급과 흥행>이란 서적을 펴낸 바 있는 이하영 전 시네마서비스 이사는 '문화후진국'이라 꼬집기도 했다.
 
"결국 올해는 심플하게 이야기 된다. 'CJ와 디즈니가 시장을 독과점해서 10위안에 8편을 올려버렸고 천만영화를 5편이나 한 해이다'. 우리나라는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오간 데 없고 수익중심의 전근대적 경영이 여전히 문화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모습이다. 문화후진국이라는 이야기다."

이른바 할리우드 '직배 영화'인 이들 디즈니 '천만영화'의 최대 수혜는 누가 입을까. 첫째는 물론 배급사 디즈니다. 홍보마케팅비와 극장 부율을 제외하고 고스란히 수익으로 환원하는 이 직배 시스템이야말로 할리우드 거대 배급사들이 스타들을 앞다퉈 '한국 투어' 비행기에 실어 보내는 이유라 할 수 있다.

특히 <겨울왕국2>의 경우, 한국은 북미를 제외하고 중국과 영국, 독일과 프랑스에 이어 5번째로 높은 수익을 올리는 중이다. 여기에 일조하는 것이 바로 대기업 멀티플렉스 극장들이다. 각종 '굿즈'나 로열티를 지불하는 상품들을 생산하는 업체들도 '디즈니 특수'를 누리는 건 당연지사.

이들을 제외하고 디즈니의 승승장구에 환호하고 주머니를 불리는 영화판 플레이어는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스크린 독과점의 수위를 극대화시키는 이들 멀티플렉스들의 배팅 감각, 즉 개봉 첫 주 될 만한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주는 '치고 빠지는 전략'이 그 도를 넘어서면서 극장가의 빈익빈 부익부, '20대 80' 현상이 극에 달하고 있다.

역시나 <겨울왕국2>의 경우,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걸린 속도는 2014년 1월에 개봉한 1편보다 거의 3배 빨랐다. 일각에서 '흥행 대박이 비수기에 터졌다'며 2019년 새로운 흥행 공식을 설명하는 보도들이 속 모르고 하는 소리인 것도 그래서다.

2019년의 시름, 2020년의 우울한 전망
 

영화 < 겨울왕국 2 >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11월에 개봉한 <겨울왕국2>은 물론 3월에 개봉한 <캡틴마블>, 각각 4월과 5월에 개봉한 <어벤져스: 엔드게임>과 <알라딘> 모두 비수기로까지 박스오피스 규모를 확장시킨 것이 아니라 비수기를 노리는 작은 영화들의 파이까지 뺏은 것이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러는 동안 마블과 디즈니 영화를 피해 개봉 시기를 잡는 한국 상업영화들의 '중박' 흥행은 점점 더 요원해지고, 거대 배급사의 텐트폴 영화 역시 기존 흥행공식에 몰두하는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영화, 극장에서만 소화 가능한 볼거리에 몰두한 영화들을 양산할 가능성이 극대화되는 중이다.

최근 400만 관객을 돌파한 <백두산>이 그 좋은 예다. 일부 평론가들과 마니아들 사이에서 '클리셰 덩어리', '초반부 CG와 연기만 볼만하다'는 평이 난무하는 가운데 승승장구 중인 <백두산>은 멀티플렉스가 될 만한 영화를 몰아줄 때야만 박스오피스 1위와 압도적 흥행이 가능해진 작금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 중이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고? 한국 영화시장은 거꾸로 가는 중이다. 한국 거대 배급사와 할리우드 직배사의 거대 예산 영화들을 선호하고, 또 이들의 카르텔을 용인하고 공고화하는 한국 멀티플렉스들(과 배급사들)이 수요의 최대치를 미리 결정하고 기존 데이터에 따라 공급을 몰아준다. 이들이 100만 영화 10편보다 천만영화 한 편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그저 짧은 시간 안에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면 그만이다. 천만 영화 5편이 나온 2019년이 그 정점에 선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내년이라고 달라질까. 스크린 상한제나 독립예술영화 쿼터제를 동시에 포함한 '영비법'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문화다양성을 기준 삼아 일정정도 법적인 규제를 강제하지 않는다면, 기업이 눈에 보는 이윤과 쌓아올린 수익 구조를 순순히 포기할 리 없지 않겠는가.  

22일 올 해 총 관객수가 2억 2000만 명을 넘어섰다. 2013년 2억 명을 돌파한 이래 2억 1000만 고지를 넘어선 것이 무려 6년 만이다. 기존 연간 최다는 2017년 2억1987만명이었다. 마블과 디즈니의 힘이 그리 셌다. 이를 두고 이하영 전 시네마서비스 배급이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렇게 한탄했다. 2019년의 시름이, 2020년의 우울한 전망이 담겨 있다. <미안해요, 리키> 속 리키의 삶이 바로 여기 한국영화계에서 고스란히 펼쳐지는 중이다. "아마 국내언론에서는 이번 기록을 가지고 국내영화시장의 성장, 확대를 이야기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영화판을 들여다보면 한참 곪아있다. 예전에 비해 심해진 독과점현상, 투자배급에 있어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들어오기에 너무나도 높아진 진입 장벽, 제작에 있어 점점 심해지고 있는 부익부빈익빈 현상,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로 인한 심각해진 산업의 불공정한 경쟁구조, 다양성영화의 파괴, 개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흥행판 등등 온갖 안 좋은 것들이 영화판에 다 모여 있다. 하지만 올해도 시장 성장이라는 숫자 앞에서 이들은 철저히 외면될 것이다." - 이하영 전 이사

<백두산>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 덱스터스튜디오





지난 12일, 박양우 문화체육부장관은 YTN에 출연, "최근 천만 관객을 동반한 <겨울왕국2>죠, 스크린 독과점 문제로 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지금 어떤 입장이세요?"라는 앵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스크린 상한제라고 흔히 얘기하는데요. 이건 특정 영화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고 벌써 몇 년 전부터 다양한 영화를 우리가 만들어야 되고 또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해야 되지 않느냐 하는 측면에서 스크린 상한제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또 한쪽에서는 시장경제에 왜 정부가 관여하느냐. 그러다 보면 국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반대 입장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나라 영화 산업이 이제 더 다양화시키고 더 좋은 영화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스크린 독점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주상영시간, 오후 1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주상영시간에 한 작품이 50% 이상을 넘기지 못하도록 하는 스크린 상한제를 정부가 추진할 것이고요. 지금 관련 법이 국회에 지금 계류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영비법이 통과될 가능성은 전무해 보인다. 그런 만큼, 구체적인 플랜 없이 "정부가 추진할 것"이란 '나이브'한 답으로 일관한 박 장관의 답변은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 정부는 점진적으로라도 스크린 독과점을 해소할 만한 영비법을 통과시킬 의지가 있을까. 이조차도 21대 총선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걸까.
스크린독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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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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