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장면
KBS
다만 아쉬운 것은 방송 출연 그 자체보다는 현주엽이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이었다. 일반 시청자의 시각과 '농구팬'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현주엽 감독에 대한 평가는 조금 다르다. 시청자들은 현주엽 감독을 먹방에 특화된 재미있는 예능 캐릭터로만 받아들였다면, '농구 감독'으로서 비쳐진 현주엽의 모습은 지극히 권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꼰대'의 전형이라는데서 위화감이 발생한다.
<당나귀 귀>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각 분야에서 성공한 리더들이 구성원들과의 갑을 관계에서 벌이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것이 관람 포인트이기는 하지만, 현주엽 감독의 경우, 방송 내내 단지 예능이라고 이해하기에는 불편한 장면들이 너무 많았다. 어엿한 성인 프로 선수들을 아마추어 학생 다루듯 하대하면서 운동과 상관없는 사적인 부분까지 간섭하기도 했다. 본인 입장에서는 나름의 소통을 위한 방식이나, 예능 방송을 고려한 과장된 모습이라고 포장할 수도 있지만,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자칫 인격과 자존심을 짓밟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한 언행들이 수시로 나왔다.
현주엽 감독의 '막말'은 심지어 27일 방송에서도 나왔다. 프로농구 개막 미디어데이를 앞두고 미용실에서 소속팀 선수 김시래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작은 목소리지만 분명히 현주엽 감독의 육성으로 "죽여버려, 진짜"라는 말이 오디오로 나온다. 당시 분위기는 물론 김시래와 장난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기는 했지만, 방송 촬영중임을 알면서도 현주엽 감독이 이런 식의 거친 언행을 남발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방송에서는 거친 언행들도 번번이 현주엽 감독 특유의 예능 캐릭터로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넘어가거나, 이른바 '해바라기' 처리를 했지만, 사실 편집을 조금만 다르게 접근했으면 꽤 심각한 문제로 보일 법한 장면도 많았다.
심지어 현 감독이 <당나귀 귀>출연으로 인기를 높여가던 시기에 은퇴 선수 하승진이 유튜브를 통하여 한국농구의 문제점으로 언급했던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지도자들'에 대한 지적, 또한 현주엽 감독이 직접 관련된 전 LG 소속 김종규(원주 DB)와의 '녹취 스캔들' 등이 맞물리며 현 감독의 모습을 방송을 위한 연출로만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분위기가 됐다.
자칫 방송을 통하여 '한국 농구 감독들은 다 저런 식의 언행을 당연하게 생각하는가' 혹은 '저런 구시대적인 지도 방식과 팀문화가 프로농구에 만연해있는가'라는 잘못된 인상을 대중에게 심어줄 위험이 크다. 제작진과 현주엽 감독 측에서도 논란을 의식했는지 마지막 몇 주 간 방송분에서는 현주엽 감독의 먹방이나 독선적으로 비칠 수 있는 모습들을 줄이고 시즌 준비 과정을 조명하며 선수들과 대화하는 '소통'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다소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결국 현주엽 감독의 예능 출연을 두고 나온 비판적인 시선에 대하여 '농구 인기를 위해서 개인 이미지를 희생했다' 내지는 '성적이 나쁘니까 방송출연까지 부정적으로 폄하당한다'는 식으로 옹호하는 해석은 처음부터 문제의 초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현주엽 감독이 농구 인기를 위한 대승적인 차원에서 방송출연을 결정한 선의는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그가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들이 '과연 한국농구와 프로 감독들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기여했는가'라는 내실도 냉철하게 따져봐야할 시점이다.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 최근 예능 방송에 본격적으로 출연하여 오히려 현역 시절에 남긴 부정적인 이미지까지 희석시키는데 성공한 농구 선배 허재나 서장훈과는 다소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크게 화제가 된 먹방도 '예능인' 현주엽의 개인기나 상품성을 보여줬을 뿐 농구 감독 본연의 모습이나 이 프로그램의 취지(보스와 직원의 갑을관계)와는 동떨어진 번외 장면에 불과했다.
현주엽 감독은 올해를 끝으로 LG와의 계약이 만료된다. 올시즌 팀 성적이 중요한 변수인데 현재로는 재계약 가능성이 순탄해보이는 상황은 아니다. 설사 올시즌이 끝난후 방송에 복귀하더라도 그 직책이 여전히 '농구 감독' 현주엽일지, 아니면 '예능인' 현주엽일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어쩌면 <당나귀 귀>가 현주엽 감독에게 남긴 가장 큰 성과라면, 역시 농구인 출신으로 활발하게 방송무대를 누비는 서장훈이나 허재처럼, 앞으로 농구를 떠나더라도 어디서든 불러줄 수 있는 재취업의 여지를 확인했다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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