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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 맥주 맛있다"... 이 말을 하면 '종북주의자'일까요?

[리뷰] 영화 <앨리스 죽이기> 블랙코미디로 담아낸 폭력과 억압의 악순환

19.07.30 09:58최종업데이트19.07.3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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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리스 죽이기> 스틸컷

<앨리스 죽이기> 스틸컷 ⓒ 인디플러그


2011년 10월부터 2012년 5월까지 미국 이민자 출신의 여성이 남편과 함께 북한을 여행했다. 사회주의 경제학을 공부한 남편은 북한 영화를 100편 이상 봤을 만큼 북한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 여행에서 본 북한이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가난하다는 생각에 실망했다. 반면 학창시절 북한 국민 자체를 악마와 같은 존재로 교육을 받았던 아내는 예상치 못한 북한의 모습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받게 된다.
 
그녀의 말마따나 관광코스로 북한을 여행했기에 긍정적인 면만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녀는 조금은 남다르고 특별했던 여행을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는 오마이뉴스에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로 연재했고 이 연재기는 책으로 출판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2014년 12월 10일 과거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을 역임했던 황선과 함께 통일 토크 콘서트를 열기 전까지 이 모든 행적들이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을 그녀는 전혀 하지 못했다.
  
 <앨리스 죽이기> 스틸컷

<앨리스 죽이기> 스틸컷 ⓒ 인디플러그

 
<앨리스 죽이기>는 '종북 콘서트를 열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당해 5년간 대한민국 입국 금지를 선고당한 신은미씨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이 작품은 문체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책을 쓴 작가가 어쩌다 종북주의자가 되었는지, 통일 콘서트가 어떻게 종북 콘서트가 되었는지의 과정을 조명하면서 국가의 주도와 묵인 속에 폭력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는지를 블랙 코미디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2008년 참여정부까지만 해도 북한을 대하는 대한민국의 자세는 한 민족이자 통일을 위해 포용해야 하는 동포라는 점이었다. 당시 북한의 핵실험과 1999년, 2002년 발생했던 연평해전 문제에 대한 확실한 매듭이 없었음에도 남북 관계는 통일과 평화에 대한 끈을 유지하고 있었고 통일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박왕자씨 피살사건,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사건 등으로 남북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된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북한에 대한 통일교육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었고 박근혜 정부는 '통일 대박론'을 내세우며 통일준비위원회가 출범하기도 하였다. 당시 종편 방송은 북한에 대한 정보를 상세하게 제공하는 뉴스를 편성한 건 물론 탈북자 출신의 방송인들이 등장하는 예능 방송에서는 북한 주민들의 일상적인 생활상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는 등 그 어떤 정부보다 북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방송에서 들려주었다.
  
 <앨리스 죽이기> 스틸컷

<앨리스 죽이기> 스틸컷 ⓒ 인디플러그

 
헌데 몇몇 언론에서 신은미의 통일 콘서트를 '종북 콘서트'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면서 문제는 커지게 되었다.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라거나 "새로운 젊은 지도자에 대해 북한 주민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발언들은 마치 북한 체제를 옹호하고 선전하는 발언으로 매도되었고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그녀가 말한 적도 없는 발언이 허위로 유포되면서 검찰조사를 받기에 이른다.

이 작품은 두 가지 측면에서 블랙코미디의 형식으로 관객들의 흥미와 의아함을 불러일으킨다. 첫 번째는 제목인 '앨리스 죽이기'이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토끼 굴에 따라 들어갈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겪는 모험을 다루고 있다. 이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가 경험하는 가장 모순적이고 잔인한 인물이 하트 여왕이다. 그녀는 별 이유도 없이 사람을 사형시키라고 말하는 존재이며 앨리스를 죽음으로 몰고 가려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당시 영국 사회의 노동과 교육 문제에 대한 풍자가 담겨 있다. 작품 속 이상한 나라는 앨리스가 머무는 현실의 영국이며 그 세계에 감춰진 문제가 이상한 정신세계를 지닌 캐릭터들을 통해 표현된다. <앨리스 죽이기>가 조명하는 현실도 마찬가지다. 통일이 종북이 되는 기이한 현상은 한 개인에게 닥친 불행이 아니며 모순과 혐오로 뒤덮인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앨리스 죽이기> 스틸컷

<앨리스 죽이기> 스틸컷 ⓒ 인디플러그

 
두 번째는 온라인 극우 커뮤니티 사이트 '일베저장소' 회원이 일으킨 테러사건이다. 이 회원은 일베저장소 게시판에 자신이 테러를 일으킬 것이라는 글을 게재했고 행사장에서 사건을 일으켜 한 남자에게 끔찍한 상처를 입히게 된다. 도시락에 일명 로켓 캔디라는 설탕과 질산 칼륨을 섞은 로켓 연료를 담아와 불을 붙여 사고를 낸 이 남자는 자신의 행위를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비유하였고 출소 후 보수단체에 의해 애국청년으로 둔갑된다.
 
감독은 이 청년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21세기 법치국가에서 법 위에 사상이 있고 폭력이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준다. 또한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에 훈장을 달아주고 치켜세우는 이들을 통해 블랙코미디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앨리스 죽이기>는 사상과 이념을 내세운 국가의 폭력 앞에 한 개인이 무너지는 역사의 아픔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지닌 작품 속 풍자를 제목과 내용에 적절히 담아내면서 극적인 재미와 아이러니한 당시의 상황을 보여준다.
 
다른 생각을 틀렸다고 규정하고 폭력을 가하고 억압하는 행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속돼 왔다. 왜곡과 침묵의 강요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결국 위험한 굴레를 만든다. <앨리스 죽이기>는 이런 굴레의 악몽을 블랙코미디적 감성으로 담아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8월 8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 씨네 리와인드에도 게재됩니다.
앨리스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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