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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희 선배' 주민진의 충격 증언... 이제야 드러난 이유

[주장] 변천사-주민진, JTBC <뉴스룸> 통해 쇼트트랙 폭행 추가 폭로

18.12.21 18:56최종업데이트18.12.21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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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쇼트트랙계 폭력 파문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동계스포츠 효자 종목으로 군림하던 쇼트트랙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폭행'이라는 끔찍했던 대물림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이자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리스트인 주민진씨는 지난 20일 JTBC <뉴스룸>과 인터뷰에서 "자신도 과거 선수시절 폭행을 당했다"며 빙상계 문제가 상당히 오래됐다고 밝혔다.
 
앞서 19일에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계주 금메달리스트이자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쇼트트랙 매니저로 근무했던 변천사가 JTBC <뉴스룸>을 통해 빙상계 민낯을 공개하기도 했다. 수십년째 깊게 뿌리 박힌 스포츠계 폭력이 하나둘씩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15년 지나도 변함없는 '폭력'

변천사와 주민진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터졌던 심석희의 폭행 피해 사건을 보면서 모두 자신들이 옛날에 당했던 것과 똑같다며 입을 모았다.
 
변천사는 2004년 당시 쇼트트랙 대표팀에 있었지만 당시 코치진으로 폭행을 당해 여자 대표팀 선수들 전원과 함께 선수촌을 무단 이탈했다. 이는 마치 심석희가 지난 1월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로부터 폭행을 당해 진천선수촌을 빠져 나온 것과 똑같았다. 변천사는 "도구로도 굉장히 많은 폭행을 당했었고 손과 발로 찬다든지 머리를 잡고 저희를 세게 집어던지는 폭행이 일어났었다"고 회상했다.
 
주민진도 "제가 대표팀 선수 시절 전부터 그래왔다"며 "심석희, 변천사의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며 "제가 당한 거랑 비슷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머리채를 흔들거나 독방에 들어가 폭행을 당한 것 등 비슷한 일이 많았다"며 "국제시합이나 외국 전지훈련 중 방으로 불러 거기서 욕설을 하고 폭행했다"고 사태의 심각성을 전했다.
 
변천사와 주민진은 모두 2000년대 초중반에 태극마크를 달고 동계올림픽을 비롯한 국제대회에 나섰던 선수들이다. 즉 지금으로부터 15년여 전에 일어났던 일이었던 것. 그런데 그렇게 오래 시간에 지났음에도 똑같은 폭력 사태가 또 불거지면서 결국 쇼트트랙계 내의 폭력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지도자들은 폭행을 휘두른 이유로 모두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라고 변명했지만 폭행을 당했던 선수들은 그에 대해 모두 부인했다. 주민진은 "그 당시에 그렇게 폭행을 당하지 않고도 좋은 성적을 냈던 선수들도 있다. 꼭 폭행을 당했다고 해서 좋은 성적을 낸 선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좋은 성적을 내던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선수 생명이 끝난 선수들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폭행을 당하는 것과 성적과는 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맞섰다.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이자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주민진의 인터뷰 모습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이자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주민진의 인터뷰 모습 ⓒ JTBC 화면 캡쳐

  
끔찍한 대물림, 나아지지 않는 빙상계

주민진의 인터뷰 가운데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폭력 실태가 대물림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주민진은 "심석희를 폭행했던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는 과거 내가 폭행을 당했을 당시 굉장히 가슴 아파했던 선배"라면서 "그랬던 선수가 똑같이 후배 선수에게 폭행을 대물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쇼트트랙은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동계올림픽 때마다 항상 금메달밭으로 꼽혔고 실제로 정식종목이 채택됐던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때부터 평창 대회까지 매 대회마다 최소 2개 이상씩의 한국 선수단 금메달을 책임져 왔다. 하지만 선수들과 코치진 입장에서는 그만큼 좋은 성적을 내야한다는 압박감도 상당했고, 이는 곧 성적 지상주의로 이어졌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성적을 내야한다는 부담감은 결국 폭력이라고 하는 해서는 안되는 카드를 꺼내들게 만들게 한 주범이었다. 또한 심석희가 지난 17일 법정에서 지목했던 '특정 선수 밀어주기' 현상도 나타나게 됐다.
 
또한 선수들이 은퇴하고 난 후 지도자가 되기까지 제대로된 교육 시스템이 없는 것도 문제다. 주민진은 JTBC를 통해 "모든 사람의 죄는 무지가 아닌가 싶다"면서 "세대가 변하면서 코치, 감독은 당연히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데, 공부를 하지 않고 무조건 많은 훈련 양과 그냥 한번 때리면 따라오는, 폭력을 행사하는 예전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다 보니, 그 외에 더 좋은 훈련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 것을 그대로 계속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실태를 꼬집었다.
 
금메달 고집시대 끝나... 성적=폭력이 답인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한국 스포츠는 더 이상 금메달이 아닌 선수들의 땀방울과 눈물에 더 많은 박수를 보냈다. 대표적으로 은메달을 따내며 전 국민적으로 영미 열풍을 일으킨 여자 컬링이 그렇다. 많은 사람들은 과거 1980~90년대와 다르게 금메달이나 1등과 같은 결과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올림픽에 오기까지 겪었던 과정들에 더 많은 의미를 두고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이렇게 추세가 변해가고 있음에도 쇼트트랙 계는 그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언제나 금메달과 성적에만 집중하는 것은 여전하고, 어린 꿈나무들은 폭력이라고 하는 끔찍한 굴레 때문에 제대로 된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있다.
 
체육계 내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변천사와 주민진은 JTBC를 통해 "당시 운동선수는 '맞으면서 할 수도 있지' 인식들이 좀 더 강했던 때였다. 또한 우리가 중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코치진들이 얘기하지 말라고 협박하기도 했고, 어디에 얘기를 한다고 해도 쉽게 해결될 수 있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선수들이 십수년째 희생당하고 있었음에도, 체육계 내부에서는 선수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거나 실태를 고발할 수 있는 길을 전혀 만들지 못했다.
 
더 이상의 폭행을 막기 위해 용기를 낸 심석희의 보고 난 후 그의 선배들은 조금 더 용기 내지 못했던 것에 대해 반성하며 후배를 응원하고 있다. 쇼트트랙계, 그리고 나아가 한국 체육계가 지금보다 발전하기 위해서 이번 사건을 통해 폭행이라고 하는 뿌리가 반드시 뽑아야만 한다. 올림픽을 금메달을 따는 장면만 보기 위해서 보던 시대는 분명히 지나갔다. 체육계 내부에서 자정 능력을 갖추고 되풀이 되는 악습을 없애야만 쇼트트랙은 물론 한국 체육이 지금보다 더 큰 박수와 응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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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변천사 심석희 주민진 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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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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