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선균이 지난 3월 20일 오전 서울 압구정CGV에서 열린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제작보고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이정민
이들에게는 방어할 자아가 없다 '영포티'는 왜 젊은 여성을 옆에 두려고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의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저서 <아주 친밀한 폭력>에서다. 2001년에 출간된 책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의 개정판인 이 책은 한국 사회의 가정 폭력 문제에 대한 교과서이자 동시에 훌륭한 여성주의 인식론 입문서이기도 하다. 책이 나온 지 10년도 넘었지만 남성들이 저지르는 폭력에 대한 저자의 통찰은 여전히 우리 사회 보다 앞서 있다. 씁쓸한 감정이 드는 이유다. "이들에게는 방어할 자아가 없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 문장은, '가정폭력을 저지른 남성들에게는 자아가 없고 세상이 모두 자기(남성)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신의 확장'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범죄임을 아예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아내를 폭력으로 다스리는 것은 남편인 자신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린 스스로가 아닌, 당연한 일을 문제 삼아 자신을 가정폭력범으로 모는 '시끄러운 여자들'을 향해 손가락질 한다. 책에 인용된 가해자들은 모두 '세상이 너무 여자들 중심으로 돌아가서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일로 처벌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자아가 없다는 것은 나와 타인을 가르는 경계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맥락에 비추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줄을 모른다. 한 마디로 성찰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영포티' 현상 이면의 남성 문제비슷한 맥락에서 영포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나는 젊으니까 어린 여성을 만나도 된다(혹은 만나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언뜻 보기에는 말이 안 되지만 그들에겐 가능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들은 자기를 모른다.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굴러간다. 젊게 사는 스스로가 이미 젊다. 그러니 나이의 상대성과 같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실 많은 수의 남성들이 보이는 이 지독한 자기중심성은 꼭 '영포티'만의 문제도 아니다. 남자들이 일으키는 대부분의 사회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가령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집단 내 성추행 문제를 살펴보자. 이들은 여성의 신체를 만지거나 그들에게 음담패설을 던지는 것을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친밀하니까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여긴다. 농담처럼 회자되는 가해자들의 '딸 같아서'라는 변명을 보라. 이 말을 거꾸로 뒤집으면 딸만큼 가까운 사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래도 된다는 뜻이나 다름 없다. 성폭력은 어떤가. 일부 남성들은 '같이 술을 마시거나 모텔로 가는 것은 성관계를 가지자는 뜻이다'라고 주장한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했건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자신이 생각한 의미뿐이다. 성추행, 성폭력뿐일까.
▲배우 이병헌이 지난 9월 25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남한산성> 시사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이정민
자신을 알자'영포티'와 어린 여성의 로맨스 판타지는 별로 새롭지 않다. 이 사안은 오히려 수많은 한국 남성들이 보였던 문제의 오래된 근원을 환기시킨다. 일각에서는 단지 드라마일 뿐인데 지나치게 민감한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불쾌감을 표했던 이유는 그 작품들 너머에 드리워진 그 뻔뻔한 남성들의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은 아닐까. 실제로 페미위키(주류 위키들의 남성중심적, 여성혐오적인 정보에 반대하여 만들어진 여성 중심의 위키백과)의 '영포티' 항목에는 이런 설명이 등장한다. '이 세대의 남성들이 현재 정치와 경제 분야의 권력을 잡기 시작하면서 자신보다 훨씬 어린 여성들을 사귀고 싶어하는 욕구를 이미 표출해왔고, 이것의 대상이 되는 여성들에게는 이미 끔찍한 성희롱과 성추행의 기억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영포티'를 둘러싼 논쟁은 2017년 한국 사회의 이슈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는 고질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를 지목한다. 4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로맨스를 그리는 드라마가 '영포티'가 초래한 현실의 문제를 교묘하게 미화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이번 논쟁을 두고두고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회를 살면서, 특히 문제가 있을 때면 나는 나와 같은 남성들 중 많은 이들에게 쓴소리를 던졌다. 만약 그 중 딱 한 가지만 들어줄 수 있다면 이것을 뽑고 싶다. 부디 스스로를 알자. 주제를 알자. 그래야지 남을 의식하게 되고 사회 속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며 폭력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이게 그리 어려운 요구도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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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티'와 20대 여성의 로맨스, 그 이면에 숨겨진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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