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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OP 여왕' 아무로 나미에 은퇴 선언, 파란만장 25년

"2018년 9월 16일 은퇴" 전격 선언에 일본 '충격'

17.09.21 15:57최종업데이트17.09.2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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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로 나미에의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 아무로 나미에


'J-POP의 여왕' 아무로 나미에의 은퇴 선언이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다.

아무로 나미에는 20일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아주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생각을 밝히려고 한다"라며 "오는 2018년 9월 16일 은퇴하기로 결정했다"라고 전격 발표했다.

이어 "14살의 나이로 데뷔하고 지난 25년간 기쁜 일, 슬픈 일, 즐거운 일이나 힘든 일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라며 "그동안 옆에 있어 준 팬 여러분께 감사하고, 앞으로 1년간 모든 것을 마음껏 쏟아내겠다"라고 밝혔다.

자신의 마흔 살 생일이자 데뷔 25주년이 되는 이날 아무로 나미에의 은퇴 선언에 일본 언론과 팬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공영방송 NHK도 메인뉴스에서 아무로 나미에의 은퇴 선언을 특집 영상으로 보도했다.

1992년 걸그룹 '슈퍼 몽키스'로 데뷔한 아무로 나미에는 1995년 솔로로 전향하며 본격적으로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듬해 발매한 <스위스 19 블루스>는 300만 장의 판매량를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아무로 나미에의 음악은 물론이고 패션, 헤어스타일 등은 일본 유행의 중심이자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떠올랐다. 당시 일본 언론은 아무로 나미에의 엄청난 영향력에 뜻하는 '아무라'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존재 자체가 메시지를 주는 아티스트"

아무로 나미에의 솔로 앨범 ⓒ 아무로 나미에


아이돌 돌풍을 넘어 일본의 '국민 가수'로 자리 잡은 아무로 나미에는 결혼과 이혼을 겪으며 인기가 주춤했다. 음악적 색깔을 바꾸며 여러 앨범을 내놓았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가정생활도 평탄하지 못했다. 결손 가정에서 자라며 아무로 나미에의 유일한 정신적 버팀목이었던 어머니가 1999년 의붓아버지의 남동생에게 살해됐고,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그러나 왕년의 히트곡들을 리메이크해 2008년 발매한 < 60's 70's 80's >이 인기를 얻으면서 재기에 성공했고, 그해 전국 투어 콘서트에 50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여왕의 귀환'을 알렸다.

팬들은 어머니의 죽음과 음악적 슬럼프를 극복한 아무로 나미에에게 예전보다 더 열렬한 지지를 보냈고, 다양한 음악적 변신을 시도하는 아티스트로 인정받으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아무로 나미에는 정치적 소신을 떳떳이 밝히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1999년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 10주년 기념 축하연과 2000년 오키나와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의 초청 가수로 나섰으나 두 차례 모두 기미가요를 제창을 거부해 우익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 음악 평론가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로 나미에는 존재 자체가 메시지를 주는 유일한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라며 "앞으로 더 활약할 수 있는 데 은퇴를 선언해 너무 안타깝다"라고 밝혔다.

아무로 나미에 일본 음악 J-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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