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의 유해진, 송강호, 최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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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평과 혹평이 갈리는 작품이지만, <택시운전사>와 <군함도>도 악역의 설정에 대해서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귀화가 맡았던 악랄한 사복형사 역은 욕하고 패(기만 하)는 여타 다른 영화들 속 군사 정권기의 형사들의 역할과 일면도 다르지 않다. 오동진 영화평론가가 언급했듯, <택시운전사>는 "역사적인 의리를 지킨 영화"고, 나 또한 그 점에 대해 완벽히 동의한다. 하지만, 영화적으로만 놓고 보았을 때, <택시운전사> 속 사복형사의 캐릭터는 1970~1980년대를 향한 우리의 서러움과 분노가 투영된 절대 악마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고, 그래서 원시적이다.
물론,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고 현실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2017년의 눈으로 70년대 반공 영화를 보면 왜 유치하다는 생각이 드는가? 선과 악을 다루는 방법이 극히 단순하고 이분법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정희 정권기에 제작된 반공 영화들에서 공산당은 근친을 일삼고 인육을 먹는 초현실적인 사탄으로 그려졌다. 물론 그 수준은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영화의 악당 캐릭터들은 크게 진화하지 못했다. 한국영화의 악당에는 장르가 존재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조폭 장르 악당', '군사 정권기 장르 악당', '전쟁 영화 악당'처럼 말이다.
2012년, <액트 어브 킬링(Act of Killing)>이라는 다큐멘터리가 공개되었다. 인도네시아의 쿠데타 기간에 반공이라는 명목으로 수백 명을 맨손으로 죽인 정부 인사, 안와르 콩고라는 인물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그가 그 많은 사람을 어떤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서 죽였는지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장면도 충격적이지만, 더 아연실색한 순간은 그런 그가 어린 손녀에게 오리를 괴롭히지 말라며 꾸짖는 장면이다. 악마의 악마성이 아닌, 보편성에서 악의 심연(深淵)을 보았다는 느낌을 준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한국영화의 악당에는 강도(intensity)만 있고 복합성(complexity)이 없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한국 영화의 전반적인(스토리와 설정 등을 포함한) 질적 정체(停滯)에도 적용 가능한 이슈다. '악당'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 지면이지만, 분명 많은 이들의 한국 영화의 '정체'에 관해서 공감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 한국 영화는 고민과 숙고가 필요하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는 제도적 이슈와 독과점 문제로 영화계가 편안하지 않지만, 결국 이러한 문제 역시 창작적인 결핍과 직결되는 것이다. 창작자와 관객 모두에게 절체절명의 순간이고 우리 모두 날을 세워야 한다.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기에 검열과 영화산업 규제로 초래되었던 영화의 질적 하락이 지금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기형적인 시장구조로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다. 다채로운 '악당'은 다채로운 시장을 담보한 사회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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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