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정>에서 하시모토 역으로 활약한 엄태구.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런 면에서 볼 때, 영화 속 '악당'은 선인(善人)보다 사회적 인덱스 (social index)로 보기에 더 유용하다. 모든 것을 수용하고 지켜내려고 노력하는 선한 주인공보다는, 불만과 탐욕이 가득한 악인을 통해 우리는 이 사회의 문제점과 부패를 목도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는 악당은 단순히 개인적 상처에 잠식되거나 사회에 찌들어 독이 오른 평면적 인물이 아니다. 광기와 허영의 집약체였던 '한니발 렉터'(<양들의 침묵>), 욕망과 자기 연민 사이의 변이체가 되어버린 '미스터 하이드'(<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세대를 걸쳐 회자 되는 것은 그들의 양가적, 혹은 모호한 시선과 태도가 부르는 호기심과 매력일 것이다. 성공적인 악당이 성공적인 영화를 만든다고 했던 히치콕의 말처럼, '절대 악'으로써만 기능하는 악당은 원시적이고 게으른 작법의 산물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최근 한국 영화에서 보이는 거의 모든 악당은 매우 단면적, 즉 이 '게으르고 원시적인 작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 악당들은 변주와 진화 없이 이미 창조되고 인식되었던 '악역'의 이미지를 반복한다 ? 다만 다른 배우와 환경을 통해. 최근 한국 영화의 문제점이라고 인식되는 점 중 하나는, 캐릭터 설정이 특정 직업의 스테레오 타입이나 문화적인 편견 '만'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캐릭터 적으로 부족한 내실을 배우의 연기로 채워가는 식이다. (관련 기사:
세상을 바꾼 기자들, 저널리즘을 다시 생각게 하다)
다시 말해, 요즘 한국 관객들은 부패 형사의 캐릭터는 어떻게 나올지, 악덕 검사의 말투는 어떨지, 식민지 시절 일본 군인은 어떤 이미지 일지, 통달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 자명한 원칙들이 별다른 도전 없이 지켜지고 있다는 얘기다.
다수의 한국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악당'의 이슈로 초점을 맞추자면 이 문제가 더더욱 명백해진다. 이 악당들은 전사(前史) 와 명분이 없다. 다시 말해, 주인공을 드러내기 위해 기능적으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소품 수준에서 멈춘다. 감정적인 변이도, 인간적인 분열도 부재한, '소구적' 존재다. 가령, <덕혜 옹주>에서 일본 정부에 편승한 조선인 '한택수(윤제문 분)' 역은 이번 <군함도>에서의 송종구(김민재 분) 역과 어떻게 다른가? 혹은 <밀정>에서의 하시모토(엄태구 분)는? 이들은 같은 시대상의 인물을 재현하고 있지만, 엄연히 다른 관계 속에서 다른 문제들과 대립하는 다른 인물들이다. 영화 속에서 동일하게 드러나는 이들의 일관적인 악마성, 무자비함은 배우들 연기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안타깝지만, 캐릭터 연구를 충분히 하지 않았거나(혹은 그럴 만한 산업적 조건이 불가하거나) 이를 드러내는 영화적 작법에 실패한 것이다.
<택시운전사>와 <군함도>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