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포스터
영화사 진진
영국 옥스퍼드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노동계급 출신 아버지가 희망했던 법조인의 길을 버리고 BBC에 입사했다. 앞서 노동운동에 투신하기도 했던 켄 로치 감독은 영국사회의 검열과 보수주의 관행에 맞서는 작품들을 국영방송 BBC에서 연출했고, 이와 무관하지 않은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데뷔작 <불쌍한 소>(1967)와 차기작 <케스>(1969)로 단숨에 주목받는 리얼리즘 감독의 대열에 올라 섰다.
이후 <랜드 앤 프리덤>까지 30여 년 동안 11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지속적으로 유럽의 복지 시스템과 노동문제, 계급문제를 좌파적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그려냈다. 스페인 내전을 그만의 방식으로 회고하고 또 현재로 연결 짓는 <랜드 앤 프리덤>은 그의 분기점과도 같은 작품이었으며, 그로부터 10년 후 <보리밭에 부는 바람>으로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러 칸 영화제는 다시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황금종려상을 수여함으로서 이 노장 감독에게 경배를 바쳤다.
영원한 현역 켄 로치의 작품 세계 영화적인 치장이나 미학에 매달리지 않는 우직한 리얼리즘이야말로 켄 로치 영화의 실천적인 미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 주변 캐릭터의 입을 빌린 약간의 설교가 포함되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진보적 관점에서 현실 범주 안에 들어있는 '비전'에 가깝다. 그의 리얼리즘은 그래서 '상류층'이나 '권력층' 인물에 관심이 없다. 일용직과 실직자야말로 켄 로치 영화들의 단골 주인공들인 이유다.
딸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실직 가장의 이야기인 <레이닝 스톤>(1993)에 앞서 만든 <하층민들> 역시 일용직 노동자 커플의 일상을 담담히 그린다. 그가 그리는 청년들은 대부분 백수(<엔젤스 셰어:천사를 위한 키스>, 2013)거나 보통의 양부모 가정과는 거리가 멀거나 사회로부터 소외된 10대(<달콤한 열여섯>, 2002)이기 일쑤다. 심지어 멕시코에서 넘어온 일용직 여성 청소노동자들은 회사의 실직 처분에 맞서 파업을 벌인다(<빵과 장미>, 2000).
이들 실직자들은 크나 큰 운명이나 휘둘리기는커녕 신자유주의의 냉혹한 시스템 안에서 톱니바퀴처럼 마모되는 인간형들이다. 켄 로치는 때로는 이들에게 얼마간의 희망도 주지만, 대체로 냉정을 잃지 않는다. 어설픈 영화적인 봉합이나 해피엔딩 따위는 현실엔 없다는 듯이, 노동 계급인 주인공들이 실제로 맞닥뜨릴 현실 위에서 열린 결말을 주는 것으로 족하다는 듯이. <나, 다니엘 블레이크> 속 '시민 선언'의 감동 이후 주인공에게 찾아 온 급작스러운 죽음이 크나 큰 비감을 주는 것도 그래서다.
켄 로치는 더불어 작금의 브렉시트나 난민의 시대를 경고해 왔다. 그건 민족주의가 알게 모르게 흥하는 유럽의 이면을 파악한 노장의 혜안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노동에서 인간의 얼굴을 지우고 이윤만으로 환원하는 신자유주의에서 반기를 들어왔던 그의 좌파적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앞서 소개한 <자유로운 세계>는 그러한 켄 로치의 선견지명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또 영국인 중산층 여성과 중동계 상류층 남성과의 사랑을 그린 <다정한 입맞춤>은 이러한 문제의식이 나타난 켄 로치식 멜로드라마였고, <빵과 장미>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을 향한 응원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자유로운 세계>는 신자유주의의 가치와 대비되는 지극히 역설적인 제목이지만, 그 세계 안에서 노동 계급 끼리의 차별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