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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서울역>에 동의하지 못한 이유

[김성호의 씨네만세 146] 설득력 떨어지는 <서울역>

16.09.02 15:06최종업데이트16.09.0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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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영화 <서울역>의 포스터.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 NEW


완전한 디스토피아다. 창문 없는 지하실에서 햇살을 느낄 수 없듯, <서울역> 가운데서도 구원은 찾을 수 없다. 경찰을 찾는 시민도, 아버지를 기다리는 딸도, 응급실에 온 환자도 안전하지 못하다. 심지어는 돌아갈 집도 없다. 구원이 없어 더욱 구원이 간절해지는 역설적 상황 가운데 생존자를 기다리는 건 참혹한 반전뿐이다. 작가 연상호가 자신의 전작들에서 거듭 구현해온 절망적 세계가 어느 때보다 많은 관객 앞에 다시금 펼쳐진다. 관객들은 그가 그린 세계와 마주해 어떤 기분을 느낄까?

영화는 서울 한복판, 서울역에서 시작한다. 그곳엔 서울시민들과 늘 함께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함께 있지 않았던 노숙자들이 산다. 단 한 명의 노숙자에서 시작해 많은 노숙자들이 좀비로 변하는 동안 도시는 속수무책이다. 단 한 번도 귀 기울이지 않았고 단 한 번도 눈 마주치지 않았던 그들이 좀비가 되어 전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

좀비의 아버지로까지 추앙받는 조지 로메로의 전설적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울역>이 비춘 세계는 암담하기 그지없다. 생존자들은 바깥의 좀비로부턴 물론이고 안의 인간에게도 공격받는데 어떤 의미로는 인간이 좀비보다 더욱 악랄하다. 그 혼돈과 재앙 속에서 관객은 인간과 사회의 진면목과 마주하게 되는데 때로 이는 좀비의 얼굴과 마주하는 것만큼 역겹고 공포스럽다.

<부산행>의 결말, 그러니까 석우(공유 분)와 상화(마동석 분)가 목숨과 맞바꿔 지켜낸 이들이 최초방어에 성공한 군대의 저지선 안까지 무사히 들어가는 것과 같은 희망은 처음부터 없다. <부산행>과 <서울역>은 좀비라는 소재만 같을 뿐 완전히 독립된 이야기로 감독인 연상호가 담아낸 주제의식 역시 두 편이 전혀 다르다. 그리고 그의 본심에 가까운 건 모두가 알다시피 <서울역>쪽이다.

"세상이 다 썩었는데, 살아서 뭐해!"

살기 위해 단단히 매달리는 혜선(심은경 목소리) ⓒ NEW


연상호 감독의 전작, <돼지의 왕> <창> <사이비>를 본 사람이라면 <서울역> 역시 그와 궤를 같이한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사이비>에서와 마찬가지로 진실을 아는 건 그들 중 가장 약하고 소외된 자들로 누구도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경찰은 좀비가 아닌 좀비에 쫓긴 노숙자들에 총을 겨누고 혜선과 노숙자가 지하철역에서 조우한 정신나간 여자의 말을 관객 대다수는 흘려 넘긴다. 오로지 연상호가 그와 같은 자들의 입을 통해 진실을 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그 대사를 귀담아 듣는다. 감독은 그녀의 입을 빌려 "세상이 다 썩었는데, 살아서 뭐해"하고 외치는데 이 말은 세상의 많은 진실한 외침과 마찬가지로 허공을 맴돌다 이내 사라질 뿐이다.

결말의 반전은 더욱 비극적이다. 연상호 감독의 영화에선 언제나 가장 악한 게 사람이고 모든 캐릭터는 선보다 악에 쉽게 이끌리며 힘과 기존 질서에 맞서 일어난 자는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서울역>도 다르지 않다. 첫 감염자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한 노숙자와 버스 위에 올라 분노를 표한 노숙자, 혜선을 구하려다 죽음을 맞은 근육남과 남자친구 등이 모두 그렇다.

문제는 이 같은 세계관이 관객에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퇴로 없는 계곡에서 적의 공격에 대항하듯 연상호의 비극적 세계관과 마주한 관객들은 그의 영화에 동의하고 공감하기보다 전력으로 저항하기를 택한다. 더욱이 복잡다단한 현실세계를 충분히 반영하길 포기하고 단순한 데다 폐쇄적인 절망적 세계를 구현하는데 만족하고 있어 관객은 영화의 전개와 결말에 충분히 동의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서울역>은 관객의 심정적 저항선을 무너뜨리고 그 비극적 세계관을 납득하게 할 만한 힘을 갖추지 못한 영화다. 연상호의 단순한 세계관은 <돼지의 왕> <창> <사이비>와 같은 닫힌 무대에서와 달리 <서울역>과 같은 열린 공간에선 설득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데 영화가 이를 만회할 만한 수단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부산행>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 초반부터 흩뿌려지는 복지, 전두환, 쉼터, 소외, 무관심 등의 코드를 하나로 꿰지 못하고 낭비하고 있다는 점도 실망스럽다. 만약 영화가 현실세계에서 유효한 비판의 지점을 집중적으로 건드리고 그로부터 관객 일반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의식으로 나아갔다면, 절망적 세계관에도 상당한 지지를 얻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이미 어떠한 희망도 없는 세계를 뜻하는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설명 없이 통용되는 게 오늘의 한국이니까, 기존에도 감독 연상호의 비극적 세계관에 꾸준한 지지를 보내온 관객들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못했고 헬조선이란 말을 쓰는 사람들도, 연상호의 전작에 호응해온 관객들도 만족을 표할 수 없었다. 이것이 <서울역>이 성공한 영화가 아닌 이유다.

좀비 출몰로 일대 혼란에 휩싸인 서울. ⓒ NEW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서울역 NEW 연상호 스튜디오 다다쇼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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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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