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씨. 필자는 '조영남은 사기꾼인가?'라는 질문에는 답할 수는 없으나, 그의 기소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남소연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이니만큼, 논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나는 진중권 교수가 제기한 많은 주장에 동의한다. 예컨대 예술가가 조수와 협업하는 것은 예술이 시작된 이래로 지속되어 온 전통이라는 점과, 이 경향은 소위 '팝아트'라 불리는 현대 미술의 조류에서 더욱 (때로는 극단적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니, 동의하고 말고의 문제도 아닐 터이다.
내가 진 교수에게 동의하는 또 다른 부분은, 조영남 작가가 조수들(혹은 대작 화가들)과 작업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행동은 윤리적으로 비판 받을 만하며, 그 행태는 명백히 '사기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작가가 조수를 써서 작품활동을 할 때에는 관객과 고객에게 그 사실을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믿는다. 진중권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영남에게 '사기죄'를 적용한 근거는 '대작의 사실을 고객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분명히 '사기적'(fraudulent) 요소가 있다. 나 역시 미학적·윤리적 이유에서 조수의 손을 빌렸을 경우 그 사실을 고객에게 투명하게 밝히는 게 윤리적으로 옳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 개인의 '윤리적' 권고일 뿐, 그게 예술가에게 부과되는 '법적' 의무인 것은 아니다."이 부분에서 진교수와 내 입장이 갈린다. 그는 앞의 글에서 '관객-구매자', '창작 행위-거래 행위', '윤리-법'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있다. 예술 작품은 미술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순간 '상품'이 되고, 이 시점부터 '윤리적 비판'으로 끝날 문제가 '법적 판단'의 문제로 바뀐다.
진중권 교수는 검찰의 기소를 비판하면서, "현대미술의 규칙을 왜 대한민국에서는 검찰이 제정하려 드는가?"라고 묻는다. 이 항의는 다소 부당한데, 검찰은 '현대미술의 규칙'이 아니라 '거래행위의 규칙'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조영남 작가는 1) 대리작가를 사용해 작품 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2) 고객에게 그 사실을 숨기거나 속여 팔았다.
앞의 행동은 진 교수가 말한 미학적-윤리적 영역이지만, 뒤의 행동은 윤리와 법이 동시에 개입되는 영역이다. 다시 말해, 이 시점에서도 조영남은 미학적-윤리적 비난을 받을 만하지만, 재판에서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때에는 법적 처벌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피해자들이 민사상의 피해보상을 요구할 때 책임져야 할 몫은 별도다.
예술과 법의 영역예술작품의 생산과 유통의 두 영역을 칼로 자르듯 나누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적 문제일 뿐이다. (나는 진중권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이론과 현실, 이론과 실천 사이의 괴리를 절감했다) 조영남 문제가 아니어도, 현실의 예술에는 '법'이 일상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예술작품은 시장에서 거래자를 만나는 순간 '공정거래법'과 '세법' 등의 형법 적용을 받기 시작한다. (저작권법은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부터 작동한다) 진중권 교수의 글은 작품의 구상과 실행 과정에 대해서는 타당하지만, 완성된 작품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측면은 설득력있게 다루지 못하고 있다. 형법 제347조는 사기죄의 구성요소와 처벌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조영남 작가는 작품을 금전과 맞바꾸면서(재물의 교부,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할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거나 혹은 거짓 정보를 제공한(기망)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상대방이 알았더라면 해당 법률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고지의무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대리작가의 활용 여부가 구매 결정에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한 경우라면, 매도 전에 그 사실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진중권 교수는 "오늘날엔 남이 그린 그림 위에 사인만 해도 본인의 작품이 된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에게 과격하게 들리겠지만, 예술 이론가로서는 충분히 가능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 이론과 별개로 '재산권 침해'라는 법적 현실이 존재한다. 구매자들 가운데 일부가 '대작 사실을 알았더라면 작품을 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구매자들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평론가의 자유다. 하지만 법적 판단은 작가뿐 아니라 구매자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검찰은 조영남 작가의 행위가 사기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그림의 거래는 작가나 작품의 내용 및 평가에 따른 매수인의 주관적인 의도가 중시되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례를 인용했다. 대리작가를 쓴 작품을 '100% 본인의 작품'으로 볼지 여부는 작가 혹은 매도자의 입장뿐 아니라 매수자의 판단도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위작'과 '모작'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