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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열정은 가지고 만들었으면...

[김성호의 씨네만세 96]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15.12.08 09:44최종업데이트15.12.0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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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의 포스터. 정작 영화를 만드는 데 '열정'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 NEW


고등학생 시절에는 대학입학이야말로 모든 고난의 끝일 줄 알았다. 대학생이 돼서는 취업만 하면 인생이 펼 것 같았고 말이다. 그렇게 막연한 기대 하나로 모든 어려움을 견뎌냈지만, 세상은 기대와는 너무도 달랐다.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어도 늘 앞에는 이뤄야 할 것들이 가득했다. 온 힘을 다해도 달성할 수 있을까 싶은 그런 것들이.

그제야 알았다. 그런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온갖 노력을 다해 벽을 넘어도 그 너머엔 언제나 또 다른 벽이 있을 것이므로.

<스포츠동명>의 연예부 수습기자로 입사한 도라희(박보영 분)도 이제 막 새로운 벽과 마주 선 청춘이다. 신문방송학과에 다니던 시절에는 수석을 놓치지 않은 재원이었다지만, 고용절벽을 넘어 고용빙하기라고까지 불리는 이 시대엔 '연예인 사생활이나 캐고 다니는' 군소매체도 감지덕지이다. 커리어우먼으로, 저널리스트로 품은 이상은 높았지만, 연예부 수습 며칠 만에 사표를 낼까 고민하는 게 그녀가 처한 현실이다.

수습기자 도라희의 사회생활 적응기?

▲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사수인 선우(배성우 분)에게 깨지고 있는 도라희(박보영 분) ⓒ NEW


입사하자마자 쏟아지는 업무의 태반은 그녀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자동차 접촉사고를 당한 아이돌그룹이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가 몇 번째 뼈가 다쳤으며 엑스레이를 몇 번이나 찍었는지 따위를 묻고 다닌다. 기자답다고 해야 할지 기레기답다고 해야 할지 모르는 일이 그녀에게 맡겨진 업무다. 연예인 사건·사고를 쫓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단독보도랍시고 시시콜콜한 열애설을 기사로 작성하고 다른 회사의 단독보도를 '우라까이'라는 이름으로 베껴대는 것도 그녀의 몫이니까.

수습기자 도라희를 힘들게 하는 결정적인 존재는 연예부장 하재관(정재영 분)이다. 잔뼈 굵은 연예기자 출신 하부장은 시도 때도 없이 열정을 강조하며 샛노란 병아리 수습기자 도라희를 말 그대로 탈탈 털어댄다. 그나마도 정말 문제가 되는 잘못으로 털리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는 게 견디기 어렵다. 태반이 '꼬장'이라 해도 좋을 사소한 지적질인데, 욕설은 물론 성희롱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하부장의 태도를 감내하는 것도 온전히 그녀의 몫이다.

청년세대의 고민, 취업난을 뚫고 구시대적 직장문화에 적응하는 N포세대의 삶을 유쾌·상쾌·통쾌하게 보여줄 듯했던 영화는 도라희와 하재관의 캐릭터가 어느 정도 정립된 후 급격하게 방향을 튼다. 처음부터 영화가 목표한 부분은 도라희의 사회 적응기라거나 그로부터 엿보이는 청년의 고민 따위가 아니었다. 러닝타임이 30분가량 흐른 뒤부터 점차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영화는 이내 수습기자 도라희의 성장기로 귀결된다.

도라희가 나름대로 특종 거리를 잡고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보도해 정의를 세운다는 이야기가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의 줄거리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마치 매카시즘 광풍이 몰아칠 당시 꿋꿋하게 정론을 펼친 CBS 앵커 에드워드 머로의 이야기 <굿 나잇 앤 굿 럭>이나 황우석 사태 당시 여론의 반발을 감내하며 진실을 보도한 PD수첩의 이야기 <제보자> 등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이런 부류의 영화는 매년 여러 편씩 쏟아지는 것이기에 굳이 수습기자까지 동원해가며 이야기를 풀어냈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문제야 제작사가 결정할 일이다.

저널리즘의 가치 vs. 밥그릇의 무거움?

▲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스포츠동명>의 수습기자들. 어차피 도라희의 이야기가 허술했다면 차라리 수습기자들의 좌충우돌 적응기를 그려내는 건 어땠을까. ⓒ NEW


여기서 따지고 싶은 문제는 영화가 '허술하다'는 점이다. 청년세대의 분투기나 적응기가 펼쳐질 듯한 전반부에서 새내기 언론인이 한 단계 성장하는 중후반부로 급선회하는 선택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저널리즘의 참의미를 깨닫고 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도통 진지한 고민이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은 얼마 보이지 않고 그나마도 우연에 기대는 게 대부분이다. 이런 장면만으로 수습기자의 성장기를 깊이 있게 그리기엔 역부족이다. 감독은 기껏해야 도라희가 기사를 공들여 쓰는 장면과 하부장 등 주변인과 싸우는 모습 등을 통해 저널리즘의 가치를 드러내려 한다. 하지만 기자의 진면목과 매력은 무엇보다도 취재과정에서 드러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영화 속 도라희와 하재관의 갈등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밥그릇의 무거움의 대립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언론이 광고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현실 속에서 자유로운 보도가 이뤄질 수 없는 현실을 비꼬는 설정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하지만 이마저도 식상한 문제의식이라 아쉬움이 적지 않다. 부하 직원의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하부장과 기자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겠다는 도라희의 갈등이란 결코 동등할 수 없다. 기자가 공정한 보도 대신 밥그릇만 챙긴다면 어떻게 그걸 기자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냥 회사원이지.

영화의 결말 역시 뜬금없다. 기존 매체를 통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SNS, 커뮤니티 게시판, 블로그 등을 통해 콘텐츠를 유통해 승리를 거두는 결말은 언론 안에서 해답을 찾으려던 이야기 전체를 미궁에 빠뜨리고 만다. 도라희의 기사는 매체 안에서 이뤄지지 못하지만, 영화의 끝에서 그녀가 남는 곳은 편집국이니 이 영화가 도대체 무얼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당혹스러울 정도다.

언론의 위기와 매체의 해체 등이 새로운 문제의식도 아니거니와, 기성언론에 문제를 던지는 영화에서 이와 같은 무책임한 결론을 내리다니 실망감만 남았다. 영화는 도라희가 편집국을 떠나 새로운 미디어의 가능성을 시험하게 하거나 편집국 안에서 기존 매체의 힘으로 승부를 보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창의적인 구석은 단 하나도 없었던 영화

▲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편집장을 피해 책상 아래 숨은 수습기자 도라희(박보영 분). 완성본을 본 그녀의 심정이 꼭 이렇지 않았을까. ⓒ NEW


이야기뿐 아니라 캐릭터 역시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창의적인 부분은 찾을 수 없었고, 너무도 전형적인 나머지 쉰내가 나는 장면들로 가득했다. 류현경, 진경, 배성우, 류덕환 등 재능 있는 배우들이 맛없는 음식점의 밑반찬처럼 아무렇게나 깔렸었다. 이들의 연기에선 어떠한 긍정적인 부분도 발견할 수 없었다. 최근 여러 작품에서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들이었다. 문제는 배우가 아닌 작품에 있다고 확신한다.

연출 역시 식상했다. 영화엔 결정적인 부분이라 부를 만한 장면이 크게 세 차례 등장한다. 악역인 장 대표(진경 분)와 도라희가 만나 적나라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 기사를 왜 내보내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도라희에게 부장이 밥그릇의 무거움을 아느냐고 쏘아붙이는 장면, 모든 문제가 해소된 이후 톱스타 우지한(윤균상 분)이 도라희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장면은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내리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한다.

영화적이라기보단 차라리 연극적이라고 불러야 할 이 세 장면은 영화가 갈등을 고조시키고 분위기를 전환하는 소위 '결정적' 장면들이다. 감독은 이러한 순간순간을 공들여 만든 에피소드와 소소한 설정을 통해 빚어내는 대신, 주요 인물들 간의 적나라한 대화를 통해 드러내길 선택했다. 단 세 장면으로 연결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장면들을 연결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투박하고 촌스러우며 급박했다. 밑도 끝도 없는 대화가 부자연스럽게 이뤄짐으로써 무엇보다 작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부류의 성장영화에서 수도 없이 보아왔던 촌스럽고 낡은 대사들을 뻔뻔하게 활용하는 진부함도 엿보였다. 성장한 도라희 주변에 햇살을 한껏 비추는 후반부는 물론 정신없이 기사를 쓰고 눈을 감은 채 '휴우'하고 한숨을 쉬는 도라희의 모습, 모든 일이 잘 끝나자 도라희를 돌아보며 엄지를 치켜드는 남자친구 서진(류덕환 분) 등 크고 작은 진부함이 그야말로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어차피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는 이런 영화였다면, 청년세대의 고민을 보다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게 어땠을까 싶다. 기자로서 성장해가는 도라희의 이야기는 직업적 사실성도 짜릿한 성장드라마의 인상도 없었다. 심지어는 고려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면에서 식상하기까지 했다. 그보다는 흔치만은 않은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으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마치 회사 안에서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를 시트콤처럼 표현한 것처럼 광고했던 내용과도 맞아 떨어졌을 테고 말이다.

제목처럼 최소한의 열정조차 보이지 않아 너무도 아쉬웠던 영화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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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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