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셰프존 웰스 감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유명배우들을 잘 캐스팅한다는 것이다. 전작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에서 메릴 스트립, 줄리아 로버츠, 베네딕트 검버배치 등을 출연시킨 그는 이번엔 엠마 톰슨과 우마 서먼을 무려 극의 흐름과 따로 노는 조연으로 활용했다. 엄청난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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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관계를 통해 변화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영화의 핵심임에도 그 관계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물과 인물의 관계를 보여주는 드라마가 매우 약하며 껍데기뿐인 에피소드의 나열과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는 미봉책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나는 지난해 봄 개봉한 존 웰스 감독의 전작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을 '겉멋만 잔뜩 든 막장영화'로 평가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새로운 영화를 들고 찾아온 감독의 수준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듯 보인다. 아니, 더 나빠졌다.
전작은 메릴 스트립과 줄리아 로버츠의 열연으로 아침 드라마보다 못한 막장적 구성이 어느 정도 상쇄됐다. 그러나 <더 셰프>는 브래들리 쿠퍼, 시에나 밀러, 다니엘 브륄, 오마 사이, 엠마 톰슨, 우마 서먼 등 유명배우가 여럿 출연함에도 캐릭터 간의 드라마가 조금도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관계를 주제로 한 영화에서 관계가 살아나지 못했다는 것, 그건 이 영화를 볼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리 지르고 접시만 깨부수는 게 셰프?살지 않는 건 드라마만이 아니다. 요리도 껍데기뿐이다. 상반기 <아메리칸 셰프>, 중반기 <심야식당>이 있었다면 하반기를 대표하는 요리영화가 바로 <더 셰프>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배경만 주방일 뿐 제대로 된 요리 하나 맛깔나게 등장하지 않는다. 음식을 보러 극장을 찾은 관객을 당혹감에 빠뜨린다.
앞선 두 영화의 경우 영화를 보는 내내 입맛을 다셨다며 찬사가 쏟아졌지만, <더 셰프>와 관련해선 이런 평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유는 명확하다. 요리가 조연 중의 조연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요리를 전면에 내세워 식감을 자극하는 대신 꾸미고 늘어놓고 대화로 처리한다. 대신 단순히 먹어대는 장면만 주구장창 삽입하는 선택을 통해 관객이 요리를 어떤 물건처럼 여기게 만든다. 스크린에서 요리되는 것들이 내가 먹을 수 있는, 혹은 먹고 싶은 것으로 다가오지 않기에 관객들이 입맛을 다시지 않는 것이다.
<아메리칸 셰프>가 샌드위치 하나를 만드는 장면에 온전히 몇 분을 할애하고, 음량을 조절하며 관객의 감각을 장악해나갔던 데 반해 <더 셰프>가 음식을 노출하는 방식은 소재를 보여준다는 의무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