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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우승 같은 시즌 '2승'... 우리카드의 값진 승리

[프로배구] 힘겨운 겨울나기... 강만수 감독이 눈물을 보인 이유

14.12.26 10:14최종업데이트14.12.2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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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좋아"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우리카드, 웃을 수 있을까. 사진은 지난 11월 12일 충남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4-2015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우리카드와 현대캐피탈의 경기에서 득점한 우리카드 선수들이 환호하는 모습. ⓒ 연합뉴스


보는 이들을 짠하게 만든 승리였다. 프로배구에서 유일하게 순위 싸움을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카드의 이야기이다. 우리카드는 지난 23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2014-15 V리그 3라운드 남자부 대한항공과의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대1로 승리를 따냈다. 시즌 2승째, 재정난과 성적 부진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면서 기록한 승리였다.

삼성화재와 OK저축은행이 선두권 경쟁을 벌이고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 한국전력, LIG손해보험이 중위권에서 치열한 다툼을 이어가지만 우리카드는 좀 다르다. 지난 11월 5일 OK저축은행과 1라운드 맞대결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한 이후 한 달이 넘게 승전보를 전할 수 없었다.

'내우외환' 우리카드... 유독 추운 그들의 겨울

시즌 전 안준찬, 신영석 등 주축 선수들이 입대하고, 외국인선수 협상도 시즌 개막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하는 바람에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 강만수 감독은 미디어데이에서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레오(삼성화재)나 마이클(대한항공)이 에쿠스라고 하면 우리 까메호는 티코다"라고 농담 섞인 멘트를 꺼내기도 했다.

구단(우리카드)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들도 배구계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최근 구단 매각이 큰 화두로 떠오른 건 사실이지만, 팀 운영에 있어서 강만수 감독이 원하는 데로 이뤄지지 못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까메호 영입을 놓고서도 "강 감독이 원래 생각했던 선수가 아니다"라는 말이 무성했다.

어렵게 시즌을 시작했고, 주전의 부재는 곧바로 경기력에 영향을 끼쳤다. 지난 시즌까지 우리카드는 삼성화재나 대한항공 같은 강팀들과 견줄 만한 팀이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는 초반부터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선수들의 눈빛에는 열심히 해보겠다는 각오가 가득했지만 뜻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선수들의 플레이에서도 엇박자가 반복됐다.

지난 11월 5일, 아산이순신체육관에서 OK저축은행을 불러들여 시즌 첫 승을 따냈지만 풀세트 접전, 승점을 2점 가져가는 데에 만족했다. 4세트 이내에 승리한다면 승점 3점을 가져가지만 5세트까지 갈 경우 승리한 팀은 2점, 패배한 팀은 1점을 가져가는 조항에 의한 것이다. 이겼지만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후 소화한 2라운드에서 전패하며 중상위권과 승차가 크게 벌어졌다. 3라운드에 돌입하면서 외국인선수 까메호의 몸 상태마저 급격하게 나빠져 국내 선수들로만 경기를 운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지난 21일, 안산 원정에서 OK저축은행에게 시즌 2승째를 가져올 수도 있었지만 경기 후반 집중력이 떨어지며 연패 숫자는 두 자릿수까지 커졌다.

10연패, 까메호는 아예 관중석을 지켰다. 지난 22일 한 언론매체를 통해 MG새마을금고가 구단 인수에 실패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며 팬들과 선수단의 탄식이 들려왔다. 안산에서 승점 1점을 얻으며 선수들의 의지에 박수를 보낸 강만수 감독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지난 23일, 상대는 최근 상승곡선을 그리며 '신영수-산체스 효과'를 누리는 대한항공이라 쉽지 않은 경기가 예상됐다.

한 달만에 거둔 승리...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재정난에도 선수들의 의지가 강한 1세트였다. 까메호가 나오지 않는 대신 신으뜸이 가세해 힘을 불어넣었다. 대한항공은 산체스를 포함해 베스트 멤버를 가동했음에도 국내 선수들만 코트에 나온 우리카드에 꽁꽁 묶이며 25-22로 무릎을 꿇었다. 특히 신으뜸의 빠른 움직임에 대한항공 수비진이 크게 흔들렸다.

2세트는 대한항공이 17-25로 22분 만에 끝을 맺었다. 1세트 승리의 기분이 오래 가기 위해서는 2세트에서도 분전이 필요했지만 무기력함이 끝내 발목을 잡고 말았다. 우리카드 입장에서 이런 경기는 허다했지만, 기대감이 조금씩 부풀던 찰나에 당한 일격이었다. 강만수 감독의 표정이 또 한 번 어두워졌다.

이전 경기들에서도 단숨에 와르르 무너지는 경향을 보였던 우리카드다. 하지만 이 날은 정반대였다. 오히려 선수들이 더 나서서 세트 초반부터 리드를 잡아나갔다. 센터 박진우를 이용한 속공 공격까지 완벽하게 이용한 우리카드는 3세트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서 25-16, 2세트의 패배를 설욕했다.

올 시즌 첫 승점 3점 획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세트스코어 2-1, 시즌 2승에 한 걸음 더 다가선 우리카드는 세트 포인트를 대한항공에게 내주며 구석으로 몰렸다. 최근 풀세트 경기에서 승리한 적이 없었기에, 강만수 감독은 4세트에서 승부를 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최소 2점, 최대 3점을 연속으로 뽑아야 세트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듀스 상황, 결국 우리카드가 웃었다. 대한항공은 마이클 산체스와 신영수 좌-우 쌍포의 활약에도 우리카드의 높이에 막혔다. 오랜 랠리에 피로감이 쌓이면서 신영수의 마지막 공격이 라인 밖을 벗어났다. 최종스코어 32-30, 40분간의 대혈투에 마침표를 찍었다.

48일 만에 승리가 고팠던 선수들은 아웃이 선언되자마자 모두 뛰쳐나왔고 강만수 감독도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한 것처럼 두 팔을 번쩍 올려 기쁨을 만끽했다. 팀 내·외부적인 요소에 흔들렸을 법도 하지만 외국인 선수 한 명 없이, 베스트 멤버로 출전한 대한항공에게 세트스코어 3-1 승리를 따냈다. 올 시즌 첫 승점 3점을 획득하는 순간이었다.

우리카드가 승리로 얻은 것이 있다면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국내 선수들끼리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돋보였다. 까메호 대신 들어온 신으뜸은 18득점에 공격성공률 48%를 기록했다. 팀 내에서 가장 높은 성공률이다. 최홍석과 김정환은 평소보다 컨디션이 올라오면서 각각 18득점씩 기록해 팀 승리에 기여했다. 센터 박진우의 11득점도 의미가 있는 대목이다.

끝내 눈물 보인 강만수 감독... 우리카드의 겨울 언제 끝나나

최근 시몬·레오 등 수준급 외국인 선수들이 리그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다. 각 팀들은 더 좋은 외국인 선수들을 뽑으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팀 사정이 좋지 않은 우리카드도 마찬가지였다. 까메호가 들어오며 겨우 시즌에 들어갈 채비를 마쳤지만 타 팀에 비해서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국내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면 팀이 와르르 무너졌다. 까메호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았지만, 일정치 이상 기대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강 감독은 그의 부진을 크게 아쉬워했다. 그런 의미에서 23일 대한항공전에서 최홍석·김정환·신으뜸 세 선수가 나란히 18득점씩 기록하며 고른 득점 분포를 보인 건 희망적이다.

무엇보다도 2승째, 오랜만에 승리인지라 선수단 전체로 시선을 돌려봤을 때 큰 동기부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 인수할 기업을 찾지 못하고 재정 상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r하지만 10연패로 패배의식에 지쳤을 선수단으로서는 기분 좋은 승리가 아닐 수 없다. 강만수 감독이 환하게 웃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팬들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할 정도여TEk.

이 날 경기 후, 수훈선수 인터뷰 대신 수장인 강만수 감독만 카메라 앞에 섰다. 원정길에 오른 우리카드를 응원하기 위해 계양체육관을 찾은 팬들에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마음 고생이 심하셨을 것 같다"는 질문을 받고 한참을 뜸들이던 강 감독은 끝내 눈물을 훔쳤다. 눈가가 이미 촉촉해졌고 말을 잇지 못했다.

강 감독은 다른 것보다도 응원한 분들, 팬들에 대한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셨는데 팀 성적이 좋질 않아서..."라면서 눈물을 흘렸고 인터뷰를 이어나가면서도 북받친 감정이 가시지를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현장 중계진의 목소리도 살짝 잠겼다. 배구를 좋아하는 누리꾼들도 하나같이 힘이 되는 메시지로 응원을 보냈다. 인터뷰가 나간 뒤 크게 회자가 되었고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며 우리카드의 어려운 사정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우리카드가 그 어느 팀보다,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강 감독의 말처럼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선수들은 매서운 눈빛 안에서도 불안함을 가지고 운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강 감독 이하 선수단, 팬들, 혹은 배구계 전체를 위해서 조속히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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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준상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뚝심의 The Ti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프로배구 V리그 우리카드 강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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