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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전문 배우' 서범석 "이번엔 목숨 바쳐"

[박정환의 뮤지컬 파라다이스] '두 도시 이야기' 시드니 칼튼 역..."나와 닮아"

14.05.21 13:25최종업데이트14.05.2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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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도시 이야기 에서 시드니 칼튼을 연기하는 서범석 ⓒ 비오엠코리아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의 주인공 시드니 칼튼은 사랑하는 여자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대신 내놓을 줄 아는 '순정남'이다. 이기적인 사랑이 횡행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 바칠 줄 아는 이타적인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서범석은 <두 도시 이야기>를 위해 다른 뮤지컬 작품을 고사할 정도로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깊다. 뮤지컬계에서 '분석의 대가'로 알려진 그는 배우들이 대본이나 캐릭터에 대해 이해되지 않을 때 맨 먼저 찾아오는 선배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그의 눈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두 도시 이야기> 외에도 영화 <세포의 기억> 촬영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서범석을 만났다.

- 작년에 이어 올해도 무대에 오른다.
"작품의 특정한 부분이 좋은 게 아니라, 전반적인 정서가 피부로 와 닿는다. 남 이야기인데 저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두 도시 이야기>를 하면서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하는 것보다는, 작품 자체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좋아서 이번 공연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시드니 칼튼은 외롭고 고독한 남자다. 그러면서도 희생의 정서가 있다. 섬세하고 예민하다. 저와 닮은 점도 있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심장을 가졌다는 점이다. 짝사랑하는 배역을 많이 해보았다. 무대에서 이루어진 사랑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시드니 칼튼 역시 짝사랑이지, 이루어진 사랑을 하는 남자가 아니다.

저는 한 여자를 사랑한다 해도, 내가 그 여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면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릴 적부터 있었다.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도 단 한 번도 먼저 좋아한다고 고백한 적이 없다. 그런 점이 시드니 칼튼과 닮았다."

시드니 칼튼은 왜 스스로 죽음을 택했을까

- 사귀고 싶은 여자가 있으면 남자가 먼저 다가서고 연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자를 자신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 여자에게 고백하지 않는다는 건 이타주의적인 사랑 아닌가.
"이기주의가 맞을 듯 싶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고백을 못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치자. 좋으면 좋다고 말을 해야 이타적인 거다. 하지만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어' 하고 사랑에 다가서지 못하는 건 이기적인 거다."

- 시드니 칼튼은 술집도 많이 드나들어서 주위에 여자가 많았을 텐데, 왜 유독 루시에게 마음을 빼앗기는가.
"원작을 보면 루시는 너무 예쁜 여자다. 하나 더, 루시는 재판정에서 루시와 아무 관계없는 찰스 다네이를 향해 눈물을 흘릴 줄 안다. 이 장면을 보고 시드니 칼튼은 '루시처럼 예쁘고 착한 여자가 나를 위해 울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 루시가 사랑을 주는 남자의 모습은 예전의 시드니 칼튼의 모습이기도 하다. 시드니 칼튼은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하지만 루시는 눈곱만큼도 부정적인 모습이 없다. 구원의 느낌을 담고 있는 한 떨기 희망 같은 여자다."

▲ 두 도시 이야기 에서 시드니 칼튼을 연기하는 서범석 ⓒ 비오엠코리아


- 시드니 칼튼은 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을까.
"시드니 칼튼이 살고 있던 시대는 격변의 시대였다. 사람 목숨이 어느 한 순간에 파리 목숨이 되는 위험한 시기였다. 귀족에 의해 모든 게 좌우되고, 있는 자의 횡포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인간성을 갖는 시대였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야 하지만, 반대로 사람이 사람을 죽여야 살 수 있는 세상 속에서, 세상을 잊기 위해 술을 입에 달고 사는 거다. 술을 마시지 않고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세상 돌아가는 게 싫어 보인다.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알코올 중독자는 굉장히 예민하다.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으니 대인관계를 잘 하려 들지 않는다. 시드니 칼튼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음을 택하는 남자다. 시드니 칼튼이 왜 대신 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루시를 만나기 전에 (알코올 중독으로) 이미 죽은 목숨이었기 때문에 죽음을 택한 것일 수도 있다. 죽은 목숨이 루시를 만나서 다시 살았는데, 죽음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찰스 디킨스의 원작 소설에는 묘사되지 않지만, 동명 영화를 보면 시드니 칼튼이 대신 죽을 생각을 가진 후 사형 집행인이 단두대의 칼날을 열심히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이 있다. 단두대의 칼날이 너무 잘 들어서 '쉽게 죽는구나' 하는 걸 알게 된다. 시드니 칼튼이 죽기 바로 전에 재봉사가 단두대에서 죽는다. 공포에 떠는 재봉사에게 시드니 칼튼은 '짧은 한 순간에 고통이 사라질 거다'라는 이야기를 건넨다.

시드니 칼튼이 마지막에 무슨 생각을 할까를 생각해보았다. 루시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도 죽는 것이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죽었다고 생각한다. '내 삶은 가치 있는 삶이었다'는 자기 성찰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한 일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대신 죽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야'라는 생각을 가졌을 것 같다."

- 대본을 많이 읽는 것 외에, 다른 각도에서 캐릭터나 대본을 볼 수 있는 노하우가 있다면.
"어릴 적에 만화책을 많이 읽었다. 만화 가게의 만화란 만화는 모두 읽었다. 5백원을 내고 2천원 어치를 읽기도 했다. 그런데 만화 가게 아저씨는 알면서도 눈 감아 주었다. 그 상상력 덕에 대본을 다양하게 분석하는 힘이 생겼다. 스스로가 생각할 수 있는 힘은 한계가 있다. 많이 듣고, 보는 가운데서 상상력이 커진다."

- 영화 <배우는 배우다>를 통해 배운 바가 있다면.
"뮤지컬 외에 영화를 하는 이유가 있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추구하기 위해서다. 스크린을 통해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을 때 자연스러워야 한다. 무대 연기는 과장된 연기가 많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과장된 감정이 나올 때가 많지 않다. 가령 장례식장의 상주를 보라. 땅을 치고 우는 순간은 찰나다. 하지만 손님이 찾아올 때에는 일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작업을 통해 연기가 달라진 걸 스스로 느낀다. 많은 무대 대본이 구어체로 돼 있어야 하는데 문어체다. 문어체를 대사로 바꾸는 건 힘든 작업이다. 하지만 영화 대본이나 TV 대본은 대사를 하기 쉽게 쓰여 있다. 영화 대본을 통해 구어체로 바꾸는 훈련을 하는 중이다."

두 도시 이야기 서범석 배우는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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