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비방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 수서경찰서 이광석 서장이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서 강남구 대포동 수서경찰서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권우성
이 영화에 나오는 경찰들은 모두 정의감이 넘치며 유능하기까지 하다. 보름 넘게 밤낮 없이 잠복을 이어가다 끝내 범인의 흔적을 찾아내는 감시반도 그렇지만, 일사분란하게 도로를 통제해 도망치던 범인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교통경찰도, 또 무장한 범인들을 꼼짝 못하게 제압하는 검거팀도 그렇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던 이런 경찰의 모습은 아마도 보는 이들에게 또 다른 쾌감을 던져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 속 멋진 경찰의 모습은 감시반의 존재만큼이나 우리의 현실과는 멀게 느껴졌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집권여당 후보에게 불리할지 모를 의혹이 불거지자 오히려 야당 후보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뒤바꿔 서둘러 발표해 버린 대한민국 경찰이 아니던가. 이는 최근 공개된 서울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실의 CCTV 동영상 녹취록을 분석한 기사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결국, 127시간 동안 분석한 내용은 사라진 채 16일 저녁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오후 11시, 경찰은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 문재인·박근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오마이뉴스>, 2013.8.1 온 국민의 눈이 쏠린 기록에도 이처럼 함부로 손을 대는 대한민국 경찰 안에 영화 속 '감시반'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섬뜩하지 않은가. 경찰청이 제작 과정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이 영화가 관객수 500만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기록을 남기고 지키는 일의 엄중함기록을 둘러싼 소란이 벌써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문제 삼기 시작한 게 지난 대선을 앞둔 때였으니 열 달 가까이 끌어온 셈이다. 따지고 보면 누군가가 들춰봐선 안 될 기록을 들춰본 데서 이 모든 문제가 비롯되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대선 국면에서 엉뚱하게도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시비를 거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수장이 스스로 국가기밀을 팔아 목숨을 부지하는 망신스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오늘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끝 모를 소란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기록을 남기고, 그 남겨진 기록을 지키는 일의 엄중함이 아닐까. 그것은 어쩌면 당장 개혁정부를 세우는 일이나, 땅에 떨어진 전 대통령의 명예를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할지 모른다. 그 옛날 절대권력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기록의 힘이 어디로부터 비롯됐는가를 떠올려본다면 더더욱 서두를 일이 아니었다. 늦었지만 부디 오늘 우리 사회가 치르고 있는 이 값비싼 비용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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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 혁명>(2023),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