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오직 인간만이 이를 '기록'한다. 수만 년 전 원시인류가 굳이 저 깊고 어두컴컴한 동굴 속 벽면을 따라 들소와 사슴 따위를 새긴 것도 삶의 흔적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길 바라서였을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그들에게조차 두려운 일이었다. '기록'의 역사는 이처럼 길다.
수만 년의 시간이 흘러 문자가 만들어지고, 기록에도 계급이 생겼다. 높은 곳에서 곁눈으로 내려다 본 세상이 밑바닥에서 힘겹게 고개를 들어 바라본 세상과 같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록의 계급은 현실의 그것과는 달랐다. 하늘을 찌를 듯한 권세도 기록보다 오래가진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기껏해야 수십 년을 살았을 높으신 분들에게 긴 세월을 거슬러 저 밑바닥으로부터 전해진 기록들은 간담이 서늘할 만큼의 두려움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들이 늘 기록을 만지작거렸던 이유다.
다시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의 흔적을 0과 1이라는 숫자로 바꿔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빅 데이터'의 등장이다. 그러나 눈부신 기술의 성취로도 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 많은 흔적들을 모조리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끝없이 쌓이는 그 기록들은 대체 누구의 것인지, 그리고 누군가 그 기록에 손대지 못하도록 막을 방안은 무엇인지 등의 질문들이다. 오늘날 기록을 둘러싸고 나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소란들은 아직 우리가 그에 대한 아무런 답도 마련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기록에 대한 영화 <감시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