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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의 발가락과 나우시카의 바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코난의 발가락이...

01.01.03 16:15최종업데이트01.01.0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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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봤다. 혹시나 극장에서 간판을 내리지 않을까해서 부랴부랴 극장을 찾았다. 역시 예상한 대로 극장에는 나와 같이 간 친구를 포함해 10명도 채 못 되는 사람만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없는 것이 오히려 암담한 미래의 지구를 보듯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혹시 이 영화를 꼭 극장에서 보고 싶은 분들은 어서 극장을 찾는게 좋을 듯.

이미 이 영화를 본 매니아에게는 영화 소개가 시간 낭비일 것 같고 아직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방대한 줄거리를 짧은 시간에 알리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아서 연상되는 이미지대로 말씀드리고자 한다.

그리고 영화 도처에 깔려있는 문화 코드나 사회학, 종교적 암시는 영화 평론가에게 돌리는 것이 알맞을 것 같다.

우리 영화팬에게 이 영화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알려진 최초의 계기는 아무래도 <미래소년 코난>일 것 같다. 그보다 전에 그가 원화를 그리는데 참여한 <플란더스의 개>도 있긴 하지만.

맨몸으로 비행기와 맞서고 쏟아지는 기관총 세례도 웃으면서 피하는 코난.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놀랄만한 괴력의 발가락이다.

발가락으로 자신의 무기인 창을 집어드는 것은 기본이고 비행기를 잡아끌고 때로는 나나(코난의 여자친구)를 안아드는데 있어 보조 손(手)역할도 한다.

현대인중 코난만큼은 아니라도 발가락을 움직이거나 이용하는 사람은 없다. 있다면 발레리나가 있을까. 하지만 발레니나의 발가락은 토슈즈에 싸인 채로 꼿꼿이 서는 데 쓰일 뿐이다.

코난의 발가락은 원시성(原始性) 아니 시원성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갈구며 희망이다. 하지만 발가락이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로 인한 퇴영이나 수구는 결코 아니다.

코난의 발가락은 네프카와 삼각탑으로 상징되는 현대 문명에 대한 반동이요, 대안이다. 만화영화의 마지막에 하이하버에서 '홀로 남은 섬'(코난이 태어난 그곳)으로 출발하는 코난 일행은 아무런 문명의 도움 없이 파라쿠다호를 타고 바람의 힘만을 이용해서 떠난다. 코난이 발가락으로 키를 잡는 모습은 나오지 않지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어떨까? 나우시카는 항상 이동하거나 위험에서 벗어날 때 동력이 아닌 바람의 힘으로 메베를 타고 움직인다. 그리고 바람계곡의 풍경은 거대한 풍차가 장식한다.

문명으로 대표되는 군사국가 '토르메키아'가 지구를 멸망시킨 '거신병(巨神兵)'을 부활시켜 부해(식물들이 내뿜는 독기로 인해 사람이 살수 없는 지대)와 부해에 살고 있는 모든 곤충(오무)들을 불태워 버리려는 계획을 진행시킬 때도 이에 맞서는 힘은 바람이다.

나우시카는 부해도 깨끗한 모래에 서식하고 맑은 공기를 쐰다면 깨끗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저지한다. 물론 가장 앞세우는 것은 바람에 실린 자신의 몸이고 먼저 공격을 당하지 않으면 결코 사람을 해치려 하지 않는 오무 유충에 대한 사랑이다.

문명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나 거부가 아닌 문명의 기반을 이루는 본연의 정신(사랑과 시원성)으로 돌아갈 것을 나우시카는 알려준다. 이 과정에서 나우시카의 붉은 옷은 평화를 상징하듯 푸르게 변하고 문명의 부산물이요 파괴자인 거신병은 불타 없어진다.

코난의 발가락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바람'은 우리를 둘러싼 문명의 이기와 찌꺼기들이 오히려 우리를 파괴해나갈 때 우리를 보호해주는 마지막 희망이다.

오늘은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언론에서 호들갑이다. 여러분은 히터가 나오는 사무실과 방에서 땀을 흘리며 행복해하고 있거나 혹시 발가락을 싸매고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오늘 밤에는 맵싸한 바람을 맞으며 이를 고맙게 느끼고 맨발로 흙을 밟아보며 코난과 나우시카를 떠올리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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