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치 포인트스틸컷
글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우디 앨런의 일침
크리스와 톰, 클로에와 노라의 테이블 위에 운과 실력이 주제로 오르는 순간이 있다. 모두가 실력, 또 노력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크리스에겐 가당찮은 이야기다. 톰과 클로에처럼 다 가진 집에서 태어나지 않은 그는 부단한 노력에도 운이 없어 좌절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고 있다.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닌, 운이 따르지 않아 실패하게 되는 순간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크리스의 강변에도 톰과 클로에는 그를 알아듣지 못한다. 선 상황에 따라 풍경 또한 달리 보이게 마련인 것이다.
크리스가 우연히 다른 테니스 선수와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크리스의 전성기 시절을 기억하는 그는 크리스가 조금만 운이 따랐다면 좋은 선수가 됐을 거라고 말한다. 몇 번의 샷이 몇 센티미터 옮겨와 코트 안쪽으로 들어갔다면 그가 선 곳이 전혀 다른 곳이었으리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에겐 운이 없었고 더는 선수로 테니스를 치지 못하게 되었다.
영화는 크리스와 노라의 관계 또한 운과 계획의 관계를 통해 풀어간다. 점점 급박해지는 상황 가운데 크리스가 내린 선택에도 운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초반의 테이블 장면, 중반에서 마주친 테니스 선수와의 대화에서 언급된 운이 영화 전체와 어우러지며 나름의 주제의식을 구현하기에 이른다. 이쯤되면 영화는 그저 한 편의 치정극으로 머물지 못한다. 테이스 경기의 마지막 한 점, 그 결정적 순간을 좌우하는 가장 중대한 요소가 바로 운이라는 사실을, 그 운이 인생과 어떻게 얽매일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내보인다.
우디 앨런은 <매치 포인트>를 통해 세상 어느 장르라도 제가 손을 대면 우디 앨런 식 재미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그건 그대로 운과 상관없는 실력의 필요를 증명하는 것일 테지만, 그가 이렇게 운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 또한 그대로 흥미롭다. 어쩌면 이 영화에도 수많은 운의 요소가 작용한 것일지 모르겠다. 운을 대하는 누구의 태도를 읽는 것, 또 그로부터 운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가다듬는 것이 이와 같은 영화의 미덕일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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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