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스틸
㈜씨네필운
영화의 시작은 요란법석이다. 주인공 '우담'은 9남매의 넷째다. 그는 학교에서 불편한 별명, '햄스터'로 불릴 만큼 요즘 보기 드문 다자녀 가족의 일원이다. 햄스터의 귀여운 모습이 아니라 엄청난 번식력(?) 때문에 붙은 별명이라는 걸 상상하긴 어렵지 않다. 우담은 왜 자신의 집만 이렇게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부모님은 중년이 되어서도 워낙 사이가 좋은 나머지, 이러다 10남매 될 위기가 언제 닥칠지 모른다. 우담은 동생들과 함께 부모님을 상시 감시하며 경계해야 한다.
비좁은 집에서 동생들은 늘 우당탕 뛰어다니고, 아파트 아래층은 거기에 질려 번번이 이사를 떠난다. 오늘도 새로운 이웃이 떡을 돌리러 왔다 유독 자기 집만 가격이 저렴한 비밀을 묻자 우담은 그 원인을 자신들의 형제자매들로 몸소 실증해 보인다. 경악한 표정으로 젊은 부부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17살, 고등학교 1학년이 되자 우담의 간절한 소망이 응답받는다. 그의 집에는 방이 3개 있다. 부모님의 방, 남자 방, 여자 방이다. 아홉째 막내는 아직 부모님과 함께 지낸다. 우담은 첫째와 둘째 언니랑 함께 여자 방에 거주했지만, 두 언니가 독립해 나가는 덕분에 독방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쁜 그는 방을 꾸미고 문 앞에 출입금지를 떡하니 남들 보라는 듯 붙여놨다. 이제 이 방에서 열심히 공부해 얼른 언니들처럼 독립하는 게 인생의 지상과제다. 하지만 곧 위기가 들이닥친다.
우담에게 햄스터라 비아냥거리며 못살게 구는 원수 같은 동급생이 있다. 공부 못하고 자신과 달리 미래에 대한 대비 같은 건 생각이 없어 보이는, 하지만 번번이 성가시고 불편한 존재, 그 이름은 '고경빈'. 날라리 일진 퀸카 같은 캐릭터다. 어제도 오늘도 둘은 툭하면 대치하다 종종 대판 싸움을 벌이기 일쑤다. 하지만 그런 앙숙이 어느 날 셋째인 오빠 '우주'와 손을 잡고 우담의 집 현관 앞에 나타난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걸까. 심지어 경빈은 오빠 우주의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당장 갈 곳이 없던 경빈은 부모님의 난감한 표정과 함께 당분간 이 집에서 함께 살기로 한다. 그런데 이 집에 빈방이 있었던가. 졸지에 우담은 어렵사리 쟁취한 방을 경빈과 함께 써야 할 판이다. 분노가 치밀어올라 주체할 수 없다. 어떻게든 원수 같은 경빈을 집에서 내보내야 한다. 하지만 경빈은 당장 갈 데가 없으니 바퀴벌레처럼 이곳에 들러붙으려는 행색이다. 무슨 수가 없을까.
다각도로 조명되는 '각자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