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스틸
㈜씨네필운
제목만 보고 요즘 독립영화에서 하나의 본류가 된 페미니즘 여성주의 서사의 변주로 본 작품을 짐작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테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확인하니 가족 시트콤 모양새다. 하지만 다시 찬찬히 이야기를 응시하면 구심력이 강한 형태로 버지니아 울프를 소환하진 않지만, 명백히 원심력 영역에선 그 자장 안에 있는 작업이란 걸 확인할 수 있다. 울프의 수필에서 1세기가 지난 상황에서 다변화된 개별 입장 속 '자기만의 방(들)'에 대해 살펴보자.
<첫 번째 방>
'자기만의 방'을 이미 성취한 이들이 있다. 9남매의 첫째와 둘째다. 첫째 언니는 발달장애를 안고 태어났지만, 가족들의 도움으로 큰 탈 없이 성장해 일자리를 얻고 약간의 조력만 함께 하면 독립생활이 가능한 조건에 이르렀다. 그는 경빈과의 갈등으로 차라리 내가 집을 떠나겠다 선언하고 조언을 구하러 온 우담에게 자신이 이룩한 '자기만의 방'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도움을 나누며 가능했던 거라는 진실을 알려준다. 이는 후반부 주인공의 변화에서 핵심적인 열쇠가 되어주는 대목이다.
<두 번째 방>
둘째 언니는 우담의 선발대이자 동경의 대상이다. 복닥거리는 집을 탈출하기 위해 탈모가 올 만큼 열심히 공부한 둘째는 지독히 실용적이다. 공무원 시험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응시할 수 있게 원래 설계된 점을 포착해 성인이 되자마자 공무원이 되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집구석이 지긋지긋한 그는 동생이 함께 살기를 조심스레 청하는 걸 매몰차게 거부한다. 그의 '자기만의 방'은 영화 초반부 내내 우담이 동경하고 추구하던 곳이지만, 오롯이 타인의 접근을 불허하는 비밀기지이자 은둔 요새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는 고립된 공간인 셈이다. 역설적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오리지널'에 가장 근접한 공간일 테다.
<세 번째 방>
초반의 시트콤 분위기에서 점점 갈등과 이해, 화해로 향하는 성장 드라마의 골격을 갖춘 영화에서 우담과 갈등의 축이 되는 경빈이 처한 환경과 그가 원하는 이상향이 또 다른 '자기만의 방'을 형성한다. 그가 활달하고 화려한 외양과 달리 늘 위기를 겪는 비밀의 공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잠정적으로 머물게 되지만 보호막과 울타리가 되어주는 우담의 가족이 사는 집 사이의 기묘한 연관 관계는 관객 각자가 영화의 주제의식을 관측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다.
<'방'에서 '집'으로>
그렇게 고립 지향적인 '자기만의 방'의 추구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부대끼며 협력하는 '가족의 집'으로 어떻게 변환되는지 탐구하는 과정이 이 영화의 주제이자 척추로 자리매김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시대에 절실했던 여성의 독립적 공간 추구가 <자기만의 방>을 선언했다면, 한 세기 후 동명의 영화는 여성의 개별적 주체화를 반영하되, 우화적으로 현 세태 속에서 이를 변주하려는 도전에 가까운 기조를 견지한다. 물론 그게 얼마나 화학적으로 잘 녹아들었는지 판단하는 건 관객의 선택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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