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텀노트스틸컷
한국독립영화협회
지난 삶으로부터 내가 배운 건 꿈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단 사실이다. 노력은 배신하고, 꿈은 이뤄지지 않는 것이 차라리 보통에 가깝다. 꿈은 지극히 이례적으로만 이루어진다. 드높고 빛나는 꿈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리하여 삶에선 꿈꾸는 것만큼이나 꿈을 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꿈이 부러져 다른 귀한 무엇에 생채기를 내지 않도록, 적절한 때 적절히 갈무리해야 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일생을 굴려온 꿈은, 그것이 간절할수록 되돌리기 어려운 일이다. 더는 꿈꾸지 말라고, 여기까지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과정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수인(박세재 분)은 피아노를 치지 않는 이다. 피아노를 치지 않는단 건 특별한 표현이다. 대개는 피아노를 치거나 피아노를 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인이 피아노를 치지 않는 건 어깨가 나간 어느 야구 유망주 출신이 다시는 야구를 보지 않는다거나, 성대결절에 이른 가수지망생 출신이 노래방조차 가지 않는 일과 비슷하다. 피아노와 얽힌 결코 좋지 않은 기억들이 그녀로 하여금 피아노를 치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수인에게 피아노는 떼놓을 수 없는 악기다. 당장 그녀가 하는 일이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피아노를 대하며 스스로가 피아노를 더는 치지 않으려 한다는 걸 깨닫는 일이 유쾌할 수 없다. 그 우울한 감상이 가을 이파리 물들 듯 수인에서 영화를 보는 이에게 번져간다.
수인에게 피아노를 쳐야 하는 일이 생긴다. 대학교에서 수인을 지도한 교수가 신인연주회에 올라 달라 부탁한 것이다. 거절키 어려운 제안이다. 수인은 연주회를 준비한다. 다시 피아노를 치기로 한다.
<어텀 노트>는 잔잔한 영화다. 조금 달리 말하면 지루하다 해도 좋겠다. 통상 영화에 기대하는 극적인 사건, 서사가 진행된다 할 만한 드라마가 없다. 보고만 있어도 우울함이 묻어나는 수인이 일상을 나는 과정이 그저 흘러가듯 화면 위로 지나쳐갈 뿐이다.
아버지와 아버지가 만나는 여자, 고모, 애인과 친구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다. 그마저도 특별히 힘이 되는 건 아니다. 수인 자체가 속을 알 수 없는 여자이기도 하지만, 주변인들도 제 삶에 바빠서인지 수인에게 큰 관심은 없다. 그나마 네 이야기를 해보라고 기회를 줘도 수인이 들을 만한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연주회 날이 하루하루 다가온다. 어쨌든 약속은 약속, 피아노를 쳐야 할 일이다.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결정
왜 연주회를 하기로 했느냐, 또 언제 하느냐고 먼저 묻지 않아 서운하게 했던 남자친구는 결국 연주회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도 수인이 강하게 청하지 않았을 테고, 무심한 그는 꼭 가야겠단 생각을 하지 못했을 테다.
졸업연주회가 여러모로 아쉬웠다며 수인이 본인 마음에도 들지 않았을 거란 아버지는 연주회장에 왔을까. 아마도 오지 않은 것 같지만 참석여부를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뿐인가. 아예 연주회 장면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드레스를 차려입고 연주회장 바깥을 걷는 수인의 모습을 짧게 잡아내는 게 전부다.
졸업연주회를 끝으로 수인은 피아노를 떠나보내려 한다. 피아노를 보내려 하면서도 조율사를 불러 조율을 맡기는 그녀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영화의 끝에서 가만히 피아노를 내려다보는 수인의 모습으로부터 감독은 관객에게 어떤 감정이 일기를 기대했을까.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스스로도 속을 터주지 않는 수인의 외로움이 끝내는 풀렸을까. 여러모로 부족한 이 영화만으론 알 수가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