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보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공산주의자로 몰려 모든 걸 잃은 천재 작가
영화는 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톤 분)가 그와 같은 고난을 겪게 된 이유를 보여준다. 때는 1940년대 말, 매카시즘의 주동자로 역사에 기록된 못난 정치인 조지프 레이먼드 매카시가 할리우드 작가들을 겨냥해 연일 거친 말을 쏟아낸다. 영화를 통해 민주적 가치를 오염시키고 국가전복을 도모하는 불온한 세력이 있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2차대전이 끝나고 4년 만에 중국이 마오쩌둥의 공산세력에게 넘어간 사건은 세계에 일대 충격을 던졌다. 강성한 소비에트연방 또한 1949년 핵실험에 성공하며 미국을 핵을 보유한 유일한 국가로 남겨두지 않았다. 전후 그간 억눌러왔던 자본주의의 문제들이 곪아서 터져나오며 파업 등 소요가 계속되고 있던 미국사회가 아닌가.
자본가와 그와 결탁한 정치인이며 언론인들은 노동조합의 배후로 사회주의, 나아가 공산주의를 지목해 온갖 괴담을 재생산했다. 적과 아군을 가르는 전쟁의 논리가 종전한 지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은 당대 사회를 휩쓸었다. 보잘 것 없는 철학과 언변, 형편없는 도덕성을 지녔던 매카시가 일약 유명 정치인이 된 것은 이 같은 흐름에 편승한 덕분이었다.
처음엔 정부, 특히 국무부 안에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주장이 먹혀들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205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가지고 있고, 이중 57명이 국무부 직원이란 주장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이는 확인되지도 확인할 방법도 없는 일방적 주장일 뿐이었다. 그는 이내 전선을 넓히길 선택한다. 당대 미국사회에서 가장 화제성 높은 집단이며, 동시에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성이 뚜렷한 할리우드가 타깃으로 지목됐다. 2차대전 기간 동안 소련에 대해 호의적인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으니 그 얼마나 수월한 작업이었나. 전쟁 시절엔 소련이 연합군의 일원이었단 사실을 기억하는 이가 없는 듯했다.
이로부터 20세기 최고의 극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유럽으로 쫓겨나다시피 망명한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찰리 채플린 또한 공산주의자란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영국으로 도피한다. 태생이 미국이어서 따로 떠날 길 없던 이들 중에서도 열 명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작품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 소위 '할리우드 텐'이라 불리는 블랙리스트다. 이중 단연 유망한 작가가, 또 그중 그를 이겨내고 걸작을 써낸 유일한 작가가 바로 트럼보다.
국회에 출두했다가 의회모독죄로 기소돼 10개월 감옥 생활까지 해야 했던 트럼보다. 출감 후 일을 구하려 하지만 어디서도 그를 써주지 않는다. 보아하니 유명 영화사가 죄다 쩔쩔매며 그를 피한다. 그를 쓰면 당장 수사며 조사가 들어올 수 있다고 두려워한다. 매카시즘 광풍이 불던 그런 때가 아닌가. 트럼보보다 훨씬 유명한 브레히트며 채플린마저 미국을 불명예스럽게 떠나야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