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청설>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04.
"내가 같이 있어야 했는데..."
용준과 여름의 떨리는 감정은 정확한 로맨스 장르의 구조에 따라 위기를 맞이한다. 두 사람의 감정이 정점을 향하는 지점에서 혼자이던 가을이 사고를 당하며 응급실에 입원하면서다. 화재로 인한 연기를 흡입한 가을은 많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후 호흡의 어려움을 겪으며 수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바로 직전의 대회에서도 일반부에서 개인 최고 성적으로 금메달을 땄고, 앞으로 1초만 더 줄이면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갈 수 있는 시점에서 안타까운 상황을 맞이한 셈이다(여기에서도 영화는 농인과 연기, 연기와 수영의 호흡은 유기적으로 맞아떨어지며 정확한 관계성을 완성한다). 영화는 이를 시점으로 두 사람의 로맨스를 잠시 내려놓고 인물의 정체성과 관계의 균형,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공감과 이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동생만을 바라봐왔던 여름이다. 자신의 부재로 인해 가을이 사고를 당했고, 차가운 물 속에서 10년을 있었는데 선발전을 못 나가게 될까 자책하는 그의 마음. 하지만 여기에는 주변 모두의 걱정과 부담이 모습을 감춘 채로 매달려 있다. 여름의 헌신과 진심을 알기에 그동안은 하지 않았던 말과 걱정이다. 동생 가을은 어느샌가 언니의 꿈이 되어버린 자신이 짊어진 무게가 버겁게 느껴지고, 자매의 부모는 자신은 돌보지 않고 가족만 챙기려는 여름의 모습이 안쓰럽다. 사랑은 힘들 것을 미리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는 엄마의 말이 힘 있게 전해지는 까닭이다. 지금껏 여름이 자신의 삶 속에 다른 무언가를 더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으니까. 용준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서로 가늠하고 추측하며, 좋은 게 좋은 것이라 덮어놓고 지나가는 일들의 어두운 면이다. 행위 자체로만 보자면 선한 의도로 행해지는 것이기에 나쁘게 생각할 여지가 없지만,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모두를 위한 행동은 아닌 것. 통제가 가능하고 예상대로의 결과가 주어지는 상황에서는 긍정적인 면만 드러나지만, 상황이 기울기 시작하는 시점부터는 보이지 않던 단점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용준이 이어플러그를 착용하고 거리를 걷고, 여름이 수영장의 물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장면은 그 거리를 좁히는 체험의 순간이다. 그렇다고 타인의 모두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으로만 가늠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는 방법은 그의 삶에 직접 뛰어들어보는 일뿐이다.
05.
영화의 후반부, 서로 멀어져 있던 여름과 용준은 수영장에서 처음으로 여름이 거리를 좁혀오며 관계를 다시 이어간다. 여름이 스스로 용준의 세계로 걸어들어오는 일. 이 사건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복선 외에도 여름이 스스로 자신의 내일을 찾아갈 것이라는 암시가 담겨 있다. 물론 그 변화의 시작에는 마지막까지 여름에 대한 감정을 놓지 않고 스스로 솔직할 수 있었던 용준의 마음이 있었다.
많은 관객이 이 영화의 원작인 동명의 대만 영화 <청설>(2010)을 이미 관람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몇몇 사소한 관계 설정이 바뀐 부분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틀은 원작과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이 작품을 보는 내내 원작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그림자를 지워내면서 훨씬 더 사려 깊은 태도를 보여줬던 것 같다. 가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작품이 툭, 하고 마음을 치고 갈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이 꼭 그랬다. 오랜만에 만난 청춘 로맨스가 마음을 흔든다. 홍경, 노윤서, 김민주, 세 배우의 무해하고 사랑스러운 모습도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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