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노라> 스틸컷
유니버설픽처스
<아노라>는 스트립 클럽 '헤드쿼터스'에서 일하는 여성 '아노라'가 러시아 부호의 아들 '이반'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영어에 약한 이반은 미국 땅에서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아노라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를 스트립 클럽 밖에서도 사적으로 고용하는 등의 행보를 이어간다. 부모를 따라 러시아로 돌아가기 싫었던 이반은 미국 시민권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아노라와 갑작스러운 결혼을 결정한다.
하지만 막상 이반의 부모님이 결혼 무효화를 주장하며 미국에 도착하자 이반은 겁에 질려 내뺀다. 아노라는 이반 부모님 휘하의 사람들과 함께 자기 남편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 과정에서 아노라는 몇 번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창녀'라며 비난받는다. 아노라를 이용해 결혼까지 주도적으로 몰아붙인 건 이반이었는데 말이다.
고생 끝에 자신이 일하던 클럽에서 술에 취한 이반을 찾아낸 아노라는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결혼 취소를 막으려고 이반을 설득하려던 작전은 수포가 되고, 이혼 소송을 통해 위자료라도 얻어 내려던 계획 없이 승산이 없게 됐다. 결정적으로 이반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차갑게 식어 버렸다.
영화는 아노라가 지친 상태로 이반 부모님이 고용한 '이고르'와 대화를 나누면서 끝맺는다. 이고르는 작중 다른 등장인물들과 달리 아노라를 향한 욕정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아노라의 스트리퍼 이름 '애니' 대신 그의 본명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아노라는 이고르의 이러한 다정함이 진실인지 알아보기 위해 신체적 유혹을 감행해 보지만, 이마저도 이고르는 거절한다.
<아노라>의 주제 의식은 이 마지막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아노라를 탐하지 않는 이고르가 '착한' 것이 아니라 그저 도의적인 인간성을 지닌 인물이라는 것, 그가 특별히 아노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고르를 제외한 모든 인물이 아노라를 하찮게 여기고 이용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깨달음이 '정상적인' 남성 캐릭터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전형적인 캣파이트(catfight, 여성 간의 싸움을 일컫는 표현으로, 주로 하찮고 관음적으로 묘사된다 - 기자 말)신을 운용한 점 등은 아쉬운 요소로 남는다.
구조적 문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