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청년, 동호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한때의 반대자도 감명케 한 삶
그러나 수십 년이 흘러 정지영은 김동호의 전기 다큐, <영화 청년, 동호>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들이민다. 김동호의 당시 모습을 술회하고, 그가 영화사에 남긴 족적을 설명한다. 김동호가 어떤 자세로 영화인을 만나 설득했는지, 어떻게 진심을 다하여 스스로 영화인이 되어갔는지를 이야기한다. 그중 하나는 상을 당한 청년 감독, 정지영을 찾아 조문한 것.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젊은 영화인을 찾아 조문할 만큼 마음을 썼다는 사실에 그는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한다.
진심이 담긴 행보로 논란을 돌파한 김동호다. 한국영화의 살 길이 해외에 있다며 적극 외국을 나다니고 한국영화를 알린 건 선견지명이라 해도 좋겠다. 해외영화제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하던 한국영화가 마침 조금씩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했다. <씨받이>에 출연한 강수연이 세계3대 영화제로 불리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가 이 때 있었다.
한국영화가 처음으로 배출한 세계적 성취가 아닌가. 강수연은 차기작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당시로선 제법 권위 있던 모스크바영화제에서도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냉전이 끝을 향해 달려가던 시기, 여전히 냉엄했던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국내외에 있던 시대였다. 구소련의 중심인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영화제이니만큼 참석 여부를 두고 영화사나 당국 또한 난감할 밖에 없던 일이다. 그때도 김동호 사장은 결단했다. 강수연은 모스크바에서 당당히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한국영화의 쾌거가 헛된 이데올로기적 갈등 아래 무산되지 않기까지, 김동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남양주종합촬영소 또한 김동호 사장이 이룩한 성과다. 1997년 설립된 이 시설은 한국영화가 자랑하는 영화촬영 세트로 명성이 높다. 수많은 영화인들과 대화한 결과 사극을 비롯한 영화촬영 세트가 필요하단 판단에 이른 그다. 김동호는 과거 예술의전당이나 현대미술관 등을 기획하고 건립한 노하우를 살려 경기도 남양주에 부지를 선정하고 촬영소 건립에 돌입한다. 한강 상수원에 대규모 시설을 건설한다는 비난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끝끝내 완공된 촬영소는 이후 한국영화 전성시대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미술관 옆 동물원> <여고괴담> <쉬리> <동감> <엽기적인 그녀> <킬러들의 수다> <파이란> <광복절 특사> <취화선> <피도 눈물도 없이> <공공의 적> <클래식> <실미도> <동갑내기 과외하기> <왕의 남자> 등 굵직한 한국영화 거의 모두가 이곳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