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채식주의자> 스틸컷
블루트리 픽쳐스
한강의 말에 따르면 영혜는 '폭력성을 밀어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이다. 그가 밀어내고자 하는 폭력성은 어디에 있는가? 주변 인물 안에 있다. 가전제품 고르듯 영혜를 선택한 남편, 키우던 강아지로 보신탕을 끓이는 아버지, 가부장제가 주는 폭력에 순응하는 언니와 예술 작품처럼 영혜를 욕망하는 형부까지.
폭력에 무감한 주변 인물들에 질려하며, 동시에 그런 자신도 폭력적인 존재임을 깨닫고 영혜는 극단적인 채식주의를 선택한다. 중요한 건 영혜가 아닌 주변 인물들이 '화자'라는 점이다. 책은 일상적으로 폭력을 행하고, 아무렇지 않은 인물의 시선으로 영혜를 바라본다. 그렇기에 독자는 화자의 서술을 거부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영혜를 읽어내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어쩌다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되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천천히 폭력성에 스며들다가 마침내 자기 파괴적 행위를 하게 되는 원작과 달리 영화 속 영혜는 마치 벼락을 맞은 듯 갑자기 채식과 자연에 홀린다. 느닷없이 채소 쌈을 고집하고, 하루아침에 가족들을 무시하는 영혜는 폭력성에 저항하는 사람보다 신경질적이고, 이상한 여성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 영화는 영혜가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에만 집중한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남편은 영혜를 돌보다가 지치고, 성관계까지 거부당하며 불만족스럽게 산다. 언니는 일과 육아를 도맡으며 아픈 영혜까지 돌보느라 힘들다. 어머니는 정성스럽게 차린 잔칫상에서 고기가 싫다는 딸의 투정을 들어야 한다.
영화는 마치 까다로운 영혜가 주변 인물들을 괴롭히는 것처럼 남편, 언니, 다른 가족의 힘듦에 이입한다. 카메라가 집중하는 건 영혜가 아니다. 영화는 완강하게 거부하는 영혜의 입에 고기를 넣는 다른 가족의 마음을 묘사하는 듯 보인다. 결국 관객은 영혜를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그런 가족에 대항하고자 자해하는 그의 행동을 더욱 납득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서 특히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고, 강아지를 죽였던 회상 장면은 자세하게 다룬다. 맞으면서 내뱉는 어머니의 신음, 죽어가는 강아지의 숨소리를 지나칠 만큼 생생하게 들려준다. 해당 장면은 폭력 그 자체를 폭력을 향한 사유로 확장되지 않고 피해자의 고통을 관조하는 데 쓰일 뿐이다.
영혜는 '야릇한' 여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