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드 룸스>의 한 장면.
찬란
'하이브리스토필리아'라는 증상이 있다. 중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증상으로,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연쇄 강도 살인을 저질렀던 범죄자 커플 '보니 앤 클라이드' 증후군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들은 잔혹한 살인마들이었으나 언론에 의해 미화되어 장례식에 2만 명 넘게 운집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1970년대 귀공자 연쇄살인마로 유명한 테드 번디는 그의 무수한 여성 팬들 중 한 명과 옥중 결혼 후 아이까지 낳았다. 가히 믿기 힘든 이상 증상이다.
영화 속 켈리앤과 클레멘타인, 그중에서 우선 언론 인터뷰에서도 슈발리에의 무죄를 주장하는 클레멘타인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물론 법정 방청석에서 유독 슈발리에를 주목하는 켈리앤의 모습도 심상치 않은 건 마찬가지다. 둘 다 하이브리스토필리아 증상의 일환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둘이 함께 고문 살해 영상을 봤을 때는 반응이 확연히 달랐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켈리앤, 그녀는 잘 나가는 모델이자 해커로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에 둘러싸여 좋은 집에서 살지만 슈발리에 재판을 방청하고자 노숙까지 감행한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동안의 서사가 전무한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범죄 자체에 빠져들 수가 없다. 장면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거니와 가해자는 아예 한마디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켈리앤에 대해서조차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다크웹의 가장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잔혹한 도시전설 '레드 룸'을 끄집어냈음에도 감독은 범죄로 가는 시선을 철저하게 가로막는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범죄 자체가 아니라 범죄 후기이기 때문이다. 끔찍한 범죄 영상을 유통시키는, 범죄 자체만큼이나 끔찍한 짓거리를 하는 행태를 보여주려 했다. 지금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 거라 더 끔찍하다. 그런가 하면 영화는 굉장히 예민하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과감하게 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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